9:13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9: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9: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쳐주신 것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맹인이었던 사람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소환을 당한 것 같습니다. 청년은 예수님이 진흙을 바르고 실로아 못가에서 씻으라 하셔서 씻고 나은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그런 기적을 들은 이들에게 기대할 만한 반응은 무엇입니까? 놀라움과 기쁨과 예수님에게 대한 팬덤과 궁금증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랜 세월 고통을 받다가 나음 받은 이 청년의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놀라운 기쁨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고침 받은 청년까지 심문하다시피 했습니다.
9: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9:17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그들의 논리는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며,하나님께로서 온 자라면 율법을 그런 식으로 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쳐주는 그런 놀라운 기적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그 누가 행할 수 있을까 하는 반론도 당연히 뒤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옹호자들과 적대시하는 자들이 쟁론이 펼쳐졌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자 그들은 고침 받은 당사자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자 유대인들은 이 기적이 조작된 사건, 자작극이라 우겼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9:18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9:19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9: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9: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9: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9: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유대인들은 부모를 불러 이 청년이 정말 소경으로 난 것이 맞는지, 지금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부모들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은 출교시킨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아들이 맹인이었다가 눈 뜬 것만 증언하고 아들에게 직접 물으라 하였습니다.
9:24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청년은 다시 소환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생각을 강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요, 치료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이니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가짜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예수님임을 믿고 시인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의 한자식 음가 표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태도가 어떠하냐, 믿느냐 배척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제자 양성, 말씀 전파, 치유와 기적 등 많은 메시아 사명을 수행하셨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사명은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가장 나약하고 비참하고 혐오스러운 십자가, 그것은 죄인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신을 위한 십자가인 것을 아는 자들, 그들만이 진정한 겸손의 옷을 입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진실된 감사와 사랑과 겸손의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진짜인가 아닌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하는가에 따라 구별됩니다.
시 2:6~9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 2: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사랑함과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 이 두가지는 하나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얻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주십니다. 그들의 죄를 보여주셔서 회개케 하시고 구원자 예수님의 대속을 보여주셔서 죄사함과 용납하심을 믿게 하십니다. 이 용서의 은혜와 사랑을 맛본 자들은 예수님을 붙좇게 됩니다. 출교의 위협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청년은 유대인들의 압력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9: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청년은 예수님이 죄인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소극적이지만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말을 부정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확실한 팩트를 들이댔습니다. 자신이 분명히 아는 한 가지는 소경이었다가 지금은 본다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놀라운 변화의 출발점은 예수님이셨는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부인하겠습니까?
9:26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9: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9: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9: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유대인들이 다시 자초지종을 묻자 청년은 화가 났습니다. 말해줘도 믿지 않고 계속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고 죄인으로 몰고 가려는 그들의 의도가 보인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왜 자꾸 묻냐고, 당신들도 예수님 제자가 되려고 그러냐고 비꼬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며 발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은 확실히 알지만 예수님은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 당시에도 모세의 권위에 대항하고 반역하던 무리가 있었습니다. 역사의 평가를 받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고 모든 이스라엘이 인정하기에 지금 이렇게 모세 모세 하는 것이지, 그들이 그 당시 있었다면 참으로 모세의 권위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인정했을까요? 모두가 인정할 때에는 그 안목의 진가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 장애물을 헤치고, 외관상 볼품 없고, 전통적인 가치관과 상식에 어긋나보이고 논쟁이 있는 이 때에 진가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겠지요.
청년은 대화를 할수록 종교지도자들의 굳은 마음, 어떤 증거와 논리를 들이대도 듣지 않는 편견과 아집의 벽을 느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커서 어찌든지 그들의 논리를 깨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지지 않고, 예수님의 기적을 근거로 예수님이 결코 죄인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람임을 편들고 싶었습니다.
9: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9: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9: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9: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청년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을 누구보다 열심히 섬기는 자로 자처하면서 왜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냐며 허를 찔렀습니다. 그들의 권위와 명성이 실은 가짜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는 말입니다.
청년은 그들의 억지 주장을 조목 조목 반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기도보다는 경건하여 그 분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바, 상식이요 합리적인 추론 아닌가, 그런데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는 이런 기적이 전무후무한 놀라운 기적인데,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일어나겠느냐 말했습니다. 청년은 종교지도자들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양심적이고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9:34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 내어 보내니라
유대인들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청년이 죄 가운데서, 소경으로 태어난 주제에 자신들을 가르치려 든다며 화를 내고 쫓아냈습니다.
권세자들에게 쫓겨난 청년을 예수님이 다시금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눈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9: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9:36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9: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9: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네가 인자를 믿느냐"
"주여 그가 누구신지요. 제가 믿고 싶습니다. 저를 고쳐주신 주님께서 믿으라 하시는 분, 믿고 싶습니다."
"네가 이미 그 인자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는 자, 바로 내가 그 인자이니라"
"오, 주여, 주님이시군요. 주님께서 바로 그 메시아시군요. 제가 믿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내가 그로라" 하시며, 예수님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을 고대하던 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도록 도와주십니다.
100% 인간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오래도록 약속하시고 예언하셨던 그 메시아로 알아보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약소국의 변두리 촌 동네 목수 청년, 그것도 십자가라는 가장 끔찍한 사형틀에서 죽어간 인물이 어떻게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셔야 가능합니다.
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9: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본문의 청년은 영적인 소경들을 눈 뜨게 하시고 진리를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누구의 눈을 뜨게 하십니까?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즉, 영적으로 죽어 진리를 보지 못하는 모든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원 대신 심판을 주시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소경이면서 본다고 우기는 자들입니다. 죄인이면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모르면서 안다고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말이 왜 거짓입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눈 먼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고침 받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이 병든 것, 못 보는 것, 죄인인 것,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전능하신 능력으로 다시 살리시는 기적이 필요한 자들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들 뿐입니다. 오직 어린아이처럼 정직한 자들만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그 구원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복음 진리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알아보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를 보게 하시고 믿음도 주시고 구원도 베풀어 주시고, 좋은 것, 귀한 것을 전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제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의 연약함과 죄악됨, 예수님의 구주 되심을 진실되이 인정하고 증거하고 누리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복음을 훼방하는 자들, 거짓 교사들, 다른 복음을 전하는 목소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님, 뭇 영혼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허락하시는 주님, 공의롭고 공평하시고 자비하신 주님, 일어나 일하여 주십시오. 이 땅에 복음 진리가 선명히 드러나, 구원을 갈구하는 모든 영혼에게 분명히 보일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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