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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152. 잃은 양의 비유 (마 18:12~14, 눅 15:1~7)

by songofkorea 2024. 4. 18.

예수님의 명성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이 거룩하신 예수님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까? 

 

눅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무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세리는 몸을 파는 창녀보다도 더 죄질이 나쁜 죄인 중의 죄인으로 멸시받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과 멀어보이고, 거룩함과 멀어보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로서, 그 안에 영원을 사모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죄를 용서받고 구원 얻고자 하는 마음, 진리를 찾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눅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들의 겉모습, 이제까지 보아온 현상만으로 판단하며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라면 죄인들과 가까이 하기보다는 의로운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 경건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만나시고 그들을 칭찬하시고 상 주실 것이라 여겼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반응입니다. 누구라도, 저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 종교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의 출신을 의심하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가늘게 뜬 눈으로 도대체 왜 저러나, 저렇게 사람 볼 줄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면 저 사람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죄인됨도 모르고 교만으로 똘똘 뭉친 종교지도자들도 인내와 긍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눅 15: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예수님은 그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 양은 소중한 자산이면서도 새끼 때부터 키우고 기르며 정이 든, 자식처럼 애틋한 존재였습니다. 양 백 마리 중 단 한 마리만 잃어도, 아흔 아홉 마리가 남아 있어도, 뭐 괜찮아 괜찮아, 큰 손해 아니야, 아직 많이 남아 있어~ 하며 산술적으로만 계산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당한다면, 목자는 남은 양들을 들에 두는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그 잃은 양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어디서 헤메고 있는지, 맹수를 만나지는 않았는지, 넘어져서 못 일어나며 버둥거리고 죽어가는 것은 아닌지, 목마르고 배고플 텐데 혹시 독초를 먹는 것은 아닌지, 별의 별 걱정이 들어 한시라도 빨리 찾고자 애쓸 것입니다. 찾고 찾기를, 찾아낼 때까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내면 야단을 칠 생각도 잊은 채 안고 메고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돌아올 것입니다.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음식을 나누며 그 기쁨을 만끽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해타산과 상관이 없는, 돈으로 줄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 그것은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과 같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살아돌아오는 것을 보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얻는 기쁨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보며 얻는 기쁨이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실은 모두 죄인들이요 회개해야 할 자들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모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말일까요. 자신들은 의인이라 생각하고 회개는 저 죄인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들은 이 친절한 해석을 듣고도 의아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 하구요. 

 

마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세리와 죄인들, 그 작은 자들 중에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으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니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냄새 나고 더러운 죄인들, 그런데 그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라도 잃고싶지 않으신 마음이라는 점... 

하나님은 죄짐과 인생짐과 종교적 짐까지 지고, 자책과 교만 사이를 롤러코스트 타는 저를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저에게, 고개를 들어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형용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도 저를 향하여 원망이나 정죄함 하나 없는 사랑의 눈, 긍휼과 자비의 눈길을 보내고 계셨고, 초대와 영접과 환영의 손을 내밀고 계셨습니다. 죄인을 감당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저 자신이 얼마나 냄새나고 더러운 죄인인지, 자꾸 잊어버리고, 바리새인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자기의에 빠져 교만의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저를 고쳐주시고 변화시켜 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죄악된 모습을 볼 때, 잃어버린 양으로, 예수님께서 찾고 찾으시는 양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방어기제와 영적인 무지와 아픈 마음과 절망감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게 도와주십시오. 위협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정죄와 비난으로 찌르지 않고도 복음 진리를 제시할 수 있도록 지혜와 사랑을 더하여 주십시오. 그 한 사람을 잃지 않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편에 서게 도와주십시오. 

긍휼을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삶 속에, 그러한 진정한 승리, 진정한 기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