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의 환경에 갇힌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신앙 고백, 즉 인간 예수님이 주시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소수지만 제자들에게 그 진리를 분명히 계시하시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궁극적으로 어떤 사명을 감당하실 것인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공히 기록된 중요한 내용으로, 메시아의 핵심 임무가 십자가 대속의 죽음임을 잘 보여줍니다.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당신께서 수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린 바 되시고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까지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제 삼일에 부활하실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매우 강한 어조로,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제발 그리 마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인지상정이요, 충성심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단'이라고까지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미션을 감당하지 못하시도록 훼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단의 목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진정어린 사랑과 충성심과 좋은 마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훼방자요 사단의 졸개로 전락할 수 있음을 생각할 때,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인지 사람의 일인지, 분별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들어도 펄쩍 뛸만한 그 끔찍한 십자가의 길이 왜 하나님의 일이요, 그리스도가 반드시 가야할 길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께서 초미의 관심을 두고 약속하시고 성취해내신 중요한 프로젝트, 성삼위 하나님의 지상 최대, 우주 최대의 프로젝트입니다. 하늘 어전 회의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의논하시고 합의하시고 작정하신 일입니다. 그 큰 지혜와 오묘하신 섭리고 기획하시고 설계하신 사건입니다.
히 10:5~7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그 원대한 계획을 애초부터 품으시고, 하나님은 처음 창조 때부터 이미 어두움을 배경으로 하셨습니다. 즉, 대적 사탄의 세력을 염두에 두셨고, 그들과 졸개들과 한통속된 자들이 최종적으로 벌을 받게 될 심판의 장까지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욥기 38:16,17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창조의 명공이 되신 성자 예수님께서, 지옥도 만드시고 그 사망의 그늘진 문을 지켜보실 때, 아담 타락 이후 수천 년 후, 죽임을 당하시고 직접 방문하실 그 심판의 처소를 바라보실 때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 낮아지심, 인간으로서 한계를 경험하시는 것, 고난과 죽으심과 성부 하나님과의 단절 등,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시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되셔서, 그 약속하신 바를 모두 성취하십니다. 문제는 인생들이 그 의미를 알고 믿음을 화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약속을 주시고, 계명과 율법과 사건으로 예습해주십니다. 장차 보내실 메시아, 무력한 양처럼 십자가에 달리실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아보고, 마음껏 믿을 수 있도록 하심입니다. 에덴 동산 가운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 두 그루를 주시고, 선악과 불순종의 현장에서 바로 그 계획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최초의 복음 메시지, 원시 복음의 계시에서 여자, 즉, 아담의 아내가 왜 중요할까요? 생명을 낳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그를 '하와'라 이름하였습니다. 성경은 하와라는 이름에 대해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창 3:20)'라고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 아닙니까?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순종 이후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단절되고 영적으로 죽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직 육체는 살아있고 하와가 지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지만 아담의 혈육은 모두 꽃병의 꽃처럼, 영적으로 죽은 자들, 하나님 앞에 부정한 자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그대로 '산 자'들의 어미가 되기 하나님은 하늘에서 새 생명을 주십니다. 즉, 광야에서 놋뱀이 높이 들리고 그것을 본 자들마다 살아난 것처럼,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신음하는 죄인들이 눈을 들어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 하늘에서부터 새로이 생명을 주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언약의 성취임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수많은 작업을 하십니다. 자식 낳는 것, 생명 낳는 것이 소원인 아브라함 부부를 25년간 훈련하시며 하늘의 뭇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노라 약속해주시고, 할례를 통해 진정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며 그것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약속의 아들, 기적의 아들, 하나님이 주실 생명의 본보기인 이삭을 필두로 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의 죽은 것, 부정한 것, 헐벗고 수치스러운 현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시내 산의 첫 언약은 인간의 죄악됨으로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케 하시고, 새 언약,오직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시고 책임과 의무를 떠 안으셔서 은혜로 이루시는 언약, 진짜로 주고자 하시는 것을 약속하십니다.
렘 31:33,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이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르 ㄹ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처럼 인류 역사 속에,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깊이 개입하셔서 인생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을 수 있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리 해도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못 깨달으니,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눈을 열어주시고 죄로 더러워진 거역하는 마음들을 불태워 소멸하시고 하늘로부터 새 생명을 주시고 마음을 바꾸어주셔서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 마음을 얻어내시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쉬지 않고 성실과 열심으로, 완전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친히 이루십니다.
그 모든 근거와 핵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대속의 죽음, 죄에 대한 공의로운 형벌과 처리가 성자 예수님을 통해, 죄 없으신 분을 통해, 신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신 여자의 후손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부정하고 더러운 죄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과 거리낌 없으신 사랑과 은총이 가능케 되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버림 받으시고, 고난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뺨을 맞으시고, 침뱉음 당하시고, 배반과 수치와 조롱을 당하시고, 손과 발이 못 박히시고, 죄인의 하나로 여겨지시고, 지옥에까지 내려가신 것은, 베드로가 느꼈듯 말도 안 되는 일, 있을 수 없는 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샘 기도를 하시며 그 잔을 피하고만 싶으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씨름하셨습니다.
주님, 놀라운 희생으로 저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저도 구원의 은혜만을 누리고 싶고, 저의 십자가는 고사하고 주님의 십자가만 생각해도 무섭고 꺼려지고 두렵습니다. 제가 이럴진대 직접 지신 주님은 어떠셨을까요.
주님, 은혜만 누리고 싶어하고, 세상 가치관과 똑같은 저를 고백합니다. 호위호식하고 싶고, 육신의 안일을 도모하는 게으르고 태만한 자입니다. 힘과 에너지가 조금만 생기고 여유가 생겨도 내 얼굴 빛내고 싶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게 됩니다. 주의 복음의 능력을 날마다 새롭고 선명하게 보여주옵소서.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변화시켜 주십시오. 믿음 더하여주시고, 나의 구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의 길을 붙좇게 도와주십시오. 매일 결심해도 바로 그 날 불순종하고 십자가를 내려놓곤 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 이미 온전히 이루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이 땅에 선명히 드러나게 도와주십시오. 훼방하고 가리우는 자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우리가 너무나 불순하나, 조금이라도 주님을 사모하고 주의 구원을 바라는 자들에게, 거짓 선지자들과 악한 영의 훼방과 자신의 무지와 죄악됨의 장애물들을 허물어뜨려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구원, 아름다우신 주님의 구원의 덕을 보게 도와주십시오. 저에게도 더욱 그 눈을 밝혀주시고, 그로 인하여 힘을 얻게 하시고, 담대하고 힘 있게 주의 복음을 전하게 도와주십시오. 저희를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 부활하사 승리를 증명해내신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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