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인기쟁이셨습니다. 불치병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병이 낫고 눈 먼 사람, 악한 영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낫고, 그 제자들까지도 파워풀한 사역을 하니, 예수님은 당시 그 일대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셨습니다.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칭송하고 어디로 가시든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또 어떤 기적을 베푸실까,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달뜬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살기 팍팍하던 시대에, 예수님과 같은 분을 스승으로 따르는 열 두 제자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시고 뒤돌아 무리들을 응시하셨습니다. 일순 조용해지며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하자,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버리고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어디까지 버릴 수 있을까요?
14:25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일시적으로 예수님의 은혜만 입고 제 갈길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가진 것은 물론이려니와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까지, 아니,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가족 아닌가요. 그리고, 만약 맨 마지막까지 챙겨야 할 단 하나를 고르라면, 자기 생명 아닐까요. 그런데, 가족도, 자기 목숨도 미워해야 하다니요.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말까지 하실 수 있으실까요?
시편 6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생명은 가장 신비롭고 황홀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양상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죄의 진창에 뒹굴거나 주변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은 그 죽음이 오히려 이웃에게 안녕을 주기도 합니다. 극심한 고통과 질병과 불안 가운데 있는 사람은 오히려 죽음을 원하기도 합니다. 생명이 생명다우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반드시 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하늘에서 새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죄로 죽은 양심이 정결케 되고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과 진실함과 사랑을 지향하는 존재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핍박과 순교의 때에는 말 그대로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신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평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을 생각해볼 때, 자기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존재를 그치고 영면에 들기를 원하는 마음 아닐까 합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성장할수록 나의 근본 문제는 외부 환경도, 주변 사람도 아닌, 죄로 병든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내 힘으로 바뀌지 않는 끈질긴 죄성이요 극복할 수 없는 것임을 거듭 느낄 때, 죽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운 저의 더러운 정욕과 위선과 교만과 미움을 볼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죄 때문에 도무지 나를 받아주실 수 없고 사랑해주실 수 없다고 느낄 때, 저의 목숨을 미워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죄를 친히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자신에 대해 긍정하고 내가 의로움을 확인하려고 애쓰는 그 인간적인 힘이 다 빠질 때까지, 합리화와 착각과 질긴 고집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셨겠지요. 그리고는, 절망속에 고개를 떨구고, 그저 죽여줍쇼, 울고 있는 저를 부드러운 예수님의 음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야, 내게로 오라, 내가 이렇게 너의 죄짐을 다 가져갔잖니. 너 대신 형벌과 저주를 다 받았잖니."
저는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누릴 수 있었습니다. 질기고 무거운 죄짐에서 해방되어 하늘로 비상하는 종달새처럼 자유와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고백에 전적으로 동의하였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습니다."
복음을 통해 나의 죄인된 것과 예수님의 구원자 되신 것을 깨달았을 때, 가지가 꺾였다가 다시 나무에 접붙임 받아 수액을 빨아올리듯, 생명의 공급자 되시는 예수님께 진짜 생명을 공급받고 삶 다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삶, 거듭난 성도의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자아로부터의 해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근거로 저를 용납하시고 용서하심을 알게 되자, 저의 부족한 모습을 정직하고 겸손하게 인정하고 또한 아파만 하지 않고 스스로 보듬어 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나, 나, 나를 의식하며 살지만, 율법이 그 기능을 발휘하여 나를 비출수록, 내 자신도 나를 용납할 수 없어서 절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원자로 만났을 때 비로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더 넓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잣대를 들이대고 쉽게 평가하고 멸시하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나 남이나 동일하게 긍휼하신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자아를 미워하고 절망한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였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나와 타인을 긍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또한 나 자신에게 과몰입되어, 인정받고자 하고, 의롭다 하는 합격 판정을 받고싶어하던 자가, 이제는 나보다 더 크고 진정 영광 받으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 것, 이는 자연스럽게 저의 존재의 이유요 목적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나의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데서,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나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 만물을 좋은 선물로 감사하며 누릴 줄 아는, 창조 목적에 맞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구원 역사로 이루신 새 언약대로, 저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레미야 31:33,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은혜가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고, 목숨까지도 버리며 끝까지 예수님을 붙좇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종교적 열심과 인간적인 의리와 충절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먼저 받은 은혜가 선행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14: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14: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14:30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14:31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14:32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일생의 방향과 삶의 양식이 달라지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잠시의 흥미와 열정으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망대를 계획하고 준공하는 일, 전략을 세우고 전쟁을 치르는 중차대한 일에 비교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노력이나 목숨이 달린 일을 치를 때, 먼저 비용이 넉넉한지, 어떻게 충당할 수 있는지, 승산이 있는지, 병력 우위를 따져볼 일입니다. 계산을 하여 승산이 없다면, 얼른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비용,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것을 직접 알려주십니다.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4: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14:35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한 사람이 가진 모든 소유입니다. 바로 위에서는 심지어 가족도,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맛을 잃으면 제 몫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소유를 챙기고 집착하는 자는 소금이라도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붙좇고 예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제가 제 목숨을 아끼고, 가족을 아끼고, 소유물을 아끼고, 더 모으지 못해 아쉬운 자입니다. 이 모든 근본 원인이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해서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입술로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저의 마음에, 시간 사용에, 삶의 자세에, 하루 하루의 내용물에, 예수님을 따르는 일로 채워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제가 요사이 물질에 대한 염려, 돈을 벌기 위한 노력으로 시간과 노력을 쓰게 됩니다. 절제하고 규모 있게 살게 도와주십시오. 지혜를 주십시오.
앞이 깜깜해 보이지만,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온 세상의 구세주,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이미 구원하셨고 또한 오늘 이 시대에도 제가 만나는 모든 문제에서 능히 구원해주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붙좇는 제자의 삶 살게 도와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을 드리고, 주님의 권능을 체험케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을 배우고 이 땅에서 소금의 맛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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