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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시가서

시편 118. 건축자의 버린 돌, 모퉁잇돌이 되다

by songofkorea 2024. 1. 5.

오늘 본문에서도 독자는 이스라엘에서 아론의 집으로, 다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로 확대됩니다. 그들을 향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을 향하여 저자는 무엇을 촉구합니까?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8: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118: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118: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여화와께 감사하며 찬양할 내용이 그의 '인자하심'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잠깐 너그러운 것이 아니라, 몇 번 참는 데까지 참아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인자하심이라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진실한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어머니의 사랑으로 연약한 인생들을 감당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신실하신 성품을 따라 끝까지 인내하시고, 용서와 인자를 베푸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끝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빛깔을 닮은 사랑으로 반응하는 존재로까지 성장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여정은 참으로 정교하고 인격적이며, 한 편의 드라마 대작,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찬양 받으실 분이십니다. 

한편, 부패한 피조물의 입장에서, 영원히 인자하신 대우가 보장된다고 할 때, 마음이 풀리고 흐트러지며 방종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한쪽에는 달콤한 당근, 한 쪽에는 무서운 채찍이 들려 있어야 할까요?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얘기한 많은 시간, 길들여지는 시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재료, 과정이라는 터널이 필요한 이유이겠죠. 그렇게 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고 그 축복과 은총과 인자를 받을 수 있는 대상들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자와 선하심을 알되 그것을 악용하지 않고 감사로 누릴 줄 아는 자들, 그로 인하여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났고 구원을 받았고 평안히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을 알고 귀히 여기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118:9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118:10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18:11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18:12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18:13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118: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시편 기자는 삶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썸씽이 있습니다. 그가 고통스러워 부르짖을 정도가 되었고,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 미워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여호와께서는 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편에 되어주실 때에 그는 어떤 사람도,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방이' 자신을 에워쌌다는 표현은, 애매한 과장일 수도 있으나, 메시아 예수님을 예표하는 예언적 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물리치고 끊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가 누구의 편이 되시고 누구를 구원해 주십니까? 저자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어 주십니까? 

힌트는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행한 바로 의로운 인생은 하나도 없지요. 모두 죄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는, 인정해주시고 받아주시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의 품으로 돌아와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한 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118:15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18: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18: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118: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의인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받은 간증들이 넘쳐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권능의 오른손으로 능력을 베푸시고 구원하셨는지 밤낮으로 얘기해도 모자란 구원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이 의인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하신 일을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심하게 경책하신 일, 그러나 죽을 것 같은 끄트머리에서 건져내신 일, 그리하여 하나님이 강력히 말씀하고자 하시는 교훈을 깨달았노라 하는 간증들이 넘쳐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하여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 완전하신 구원을 아는 자들은 담대히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118:19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118: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 가리로다

118: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 놀라운 구원 역사를 성취해 내시기 위해 예수님은 버림받은 존재처럼 되셨습니다. 그러나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처럼, 결국 버림당하고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은 이제 모든 구원받은 자들로부터, 모든 자연만물에게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가장 뛰어난 명예를 얻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이루신 기이한 일이요, 그 여정과 역설과 반전을 아는 자들은 모두 놀라워할 것입니다.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8:23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118: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예수님 이전 사람으로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가 있을 것을 알고 그 분을 복되다 노래합니다. 그 놀라운 구원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명을 띠고 오십니까? 줄로 희생 제물을 제단 불(다른 역본에 '뿔')에 매라는 표현은 살아 있는 짐승을 붙들어 매는 모습을 그려줍니다. 구원을 노래할 때에, 그 배경의 어두운 부분에는 항상 누군가 죽고 희생 당하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전제로 해야만 모든 구원 역사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118: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118: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나니 줄로 희생을 제단 불에 맬지어다

118: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118: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인생들은 죄의 진창을 구르고 하나님의 생명 근원에서 단절된 절망을 경험하며 하나님에 대해,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또 한편,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위와 하늘 영광을 뒤로 한 채 유한한 육체를 입고 인생들과 똑같이 되셔서 피조물 됨을 경험하시며 무엇을 배워가셨을까요?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제한하고 내려놓으며 죽음과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며 얻으신 것을 무엇일까요? 유한한 인생들과 함께 하셨고,  깊이 이해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신 주님, 그러다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지점에서는 우리를 안전지대에 두시고 홀로 영문 밖으로 나아가, 우리 죄짐을 홀로 지고가신 주님... 이 어떠한 사랑일까요? 

주님은 그 놀라운 지혜와 사랑의 여정을 먼저 걸으셨고, 그로 인하여 구원얻은 동생들을 또한 그 여정으로 부르십니다. 쉽고 가볍다고 하시며 함께 가자 하십니다. 제가 두려움이 있고 육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자이지만, 나의 주님을 사랑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그 놀라운 능력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고난을 통해 승리와 풍성한 결실에 참된 기쁨을 누리는 인생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