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것, 즉 사람들 눈앞에서 위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우리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의식해야 하는 눈은 하나님의 눈임을, 마땅히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은 듣는 이들을 지칭하여 '내 친구'라 하셨습니다. 친구에게는 남들에게 하지 못할 말, 진실된 말, 충직한 조언을 해주듯, 예수님께서 그들을 참으로 아까기에 꼭 해주고 싶은 말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2: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세상에는 많은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 심지어는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쓰는 사람도 두렵습니다. 최악의 경우, 내 생명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남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 입성할 수도 있고,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할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요한계시록 21:6-8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는 것은 영원한 형벌입니다. 백 세를 살다 가는 이 땅의 운명도 중요한데, 영원한 운명은 얼마나 중차대할까요. 이 영원한 운명을 가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요한계시록 말씀에는 왜 '두려워하는 자들'이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됩니까? 이 두려움은 '믿지 않는 자들'이 갖는 두려움, 즉, 하나님과 아직 화평을 맺지 못하고 원수된 자리에서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폭군처럼 보이고, 율법의 잣대로 자신을 징계한 분으로만 여겨져서 관계가 파괴되고 단절된 상태의 두려움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한다는 것이 폭군의 절대 권력에 시달리듯 두려워하는 그런 두려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악한 세상 권세자들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 어려운 신자들에게, 우리 목숨 뿐 아니라 영원한 삶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든든히 지켜주심을 믿고 담대히 의를 따라 살 수 있습니다.
12: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12: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당시 다섯 마리 꼬치가 500원, 1000원에 포장마차 안주로 팔렸을 참새들... 예수님은 그 하찮아보이는 참새 한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참새 한마리가 일생을 보내는 동안, 가족을 주시고, 편히 쉴 보금자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살뜰히 돌보실까요. 예수님은 그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하시고, 필요를 아시고, 연약함과 잠재력을 모두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만한 모든 것을 주셨고, 또 더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대해, 세상 사람들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이생 뿐 아니라 영생의 운명을 가르실 참된 권세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법과 원칙대로 하자면 하등 희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 끝에 나타나셨고, 자기 몸을 드리셔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26b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당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유대 종교 사회에서 내쫓길만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하나님께 인정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부인당할 것입니다.
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12: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제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제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나의 주님으로 인정해드리고 주님 앞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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