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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049.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고치심 (요5:1-8)

by songofkorea 2019. 11. 10.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앞서 금식 논쟁이 있은 지 얼마 후, 예수님은 유대인의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은 부림절,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초막절, 수전절 등이 있는데, 정관사가 붙은 것을 보면 유월절이나 장막절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참조: 원문 성경, 쿰란출판사)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양문은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하며, 베데스다('자비의 집')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각종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 연못은 간헐천이어서 가끔씩 물이 솟구칠는데, 이를 천사와 연결하여 병이 낫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을 것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이 지푸라기 하나를 잡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거기에는 무려 38년이나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로 나을 수 있을지, 기대감이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른 데 있을 곳도 없어, 이 베데스다 못가에서 하릴 없이, 삶의 테입을 말아 감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는 베데스다 못 가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가망 없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셨을 때, 그가 병이 오래된 것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가련한 병자는 선뜻 '당연하죠. 낫고 싶어요. 낫게 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낫고는 싶지만, 혼자 힘으로는 힘들고, 도와주는 이도 없고, 경쟁에서 밀려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 사람의 의식 속에는 예수님의 질문이 뭔가 자신을 질타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 같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그의 내면에 쌓인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1등만 나을 수 있는 베데스다, 아예 희망이 없지는 않은데, 나는 남들처럼 빠르지 않고 부지런하지 않고 더 노력하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함을 탓하는 마음, 남들에게 비난받는 것 같아 방어적이 된 그의 내면이 드러납니다.

냉엄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약한 자, 넘어진 자에게 마냥 도움을 줄 수 없는 한계적인 세상, 그리하여, 동정하고 도와주기는커녕, '너만 힘드냐? 왜 그거 밖에 못 하냐?' 비난하는 것이 편한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세상의 결론입니다. 힘들지. 하지만 어떡하냐 현실인 걸. 나도 내 살기 바빠. 낫고 싶으면, 더 독기를 품고 노력해야지. 나을 때까지는 잠도 자선 안 되고, 한눈 팔지 말고 연못만 집중해야지. 니 노력이 부족한 거야....

희망고문을 당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베데스다는 1등만 기억하고 나머지 절대 다수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자비의 집에 희망을 품고 다가갔는데, 너는 실패했어,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했어! 하며 잔인한 비난과 정죄감이 돌아옵니다. 어쩌면 베데스다는 인생들이 헛된 소망을 두는 모든 우상을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예수님의 그의 곁에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과 다르십니다. 살아계시며, 우리의 삶과 내면을 주목하여 보시고 잘 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우리가 헛된 베데스다에서 눈을 돌려, 진정한 베데스다 되신 예수님을 알아보기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신기루가 사라지고 환멸의 바닥에서 슬퍼하고 있을 때, 겸손해져서 비로소 들을 귀가 생겼을 때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구원 얻고 싶으냐?', '네가 병에서 놓여나 온전하게 되고 싶으냐?' 물으십니다. 그리고 무지한 우리가 횡설수설해도, 우리 진심을 아시고 고쳐주고자 하십니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38년 된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것, 그의 침상을 드는 것, 걸어가는 것...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창조주의 권능으로, 성취되는 말씀, 그 뜻대로 이루시는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창조하신 주님의 피조물로서, 우리의 영혼과 몸은 창조주의 명령에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풍병자는 곧 나았습니다. 불가능해보이던 그 명령에 순종하여 일어나려 하자 일어나졌고,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것이 전혀 문제 없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무력하고 쓸모 없고 비참했던 손과 발에 힘이 생기고 다리가 움직이고 몸 마디 마디가 쌩쌩해져,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1등부터 꼴등까지, 겸손히 구원을 바라는 우리 모두의 구원자, 진정한 베데스다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