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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 복음이 궁금해?

23. EXODUS - 유월절 어린 양

by songofkorea 2016. 12. 15.

6. 예언과 예표

23. EXODUS - 유월절 어린 양


영화 큐레이션: Edges of the Lord (2001) 

 

출처: 영화 데이터베이스 http://www.imdb.com/title/tt0245090/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은 영화입니다. 해외 출장 때, 호텔에서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아역 배우의 눈빛 연기가 일품입니다. 주인공 소년이 낯이 익다 했더니, 포레스트 검프에 출연했던 귀여운 검프 2세더라구요. 특히 식스 센스와 A.I.의 주인공 할리 조엘 오스먼트 하면 모두 아실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참 특이하지 않나요? 굳이 해석하자면 주님의 옆구리’, 혹은 주님의 가장자리정도 될까요? 영화의 중요한 상징은 천주교의 미사 때 거행하는 성만찬… ‘edge’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본체에 대비하여 변두리’,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신성한 주님의 몸 본체에 비해 (그런 게 있을까마는…) 죄인들이 부담을 덜고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뜻이죠.

나찌의 위협을 피해 시골 마을로 피신한 유태인 소년, 그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던 신부님. 어느 날 주일 미사에서 먹을 성체의 빵떡을 준비하던 신부님은 소년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다가, 빵떡의 옆구리를 소년에게 먹으라고 권합니다. 동그란 빵틀을 사용해서 떼내고 남은, 둥근 마름모꼴의 조각들이지요.

성만찬 예식은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자신의 죄를 대신 담당하기 위한 것임을 믿는 신도들의 신앙 고백적인 의식입니다. 특히 천주교에서는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가 성도의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예수님의 진짜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化體說)을 가르치는데요. 그래서 소년은 신부님이 내어민 마름모꼴 빵조각에 깜짝 놀랍니다. 미사 시간도 아닌데, 신성한 주님 몸인데 이렇게 사석에서 먹어도 되나 싶어 움찔한 것이지요. 망설이는 소년에게 신부님이 말합니다. “이건 먹어도 돼. 주님의 가장자리(‘edge of the LORD’)잖아.”

그 장면이 영화의 전반부에 복선처럼 깔린 후, 본 내용으로 들어가 어린 소년의 성장기가 그려집니다. 전쟁 통에 유태인 소년은 많은 일들을 겪게 되지요. 자신을 좋아해주던 여자 친구를 어려운 상황에서 지켜내지 못하여 좌절하기도 하고, 서슬 퍼런 나찌 병사들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원치 않는 쇼를 하게 됩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동족 유태인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소리를 치며 호통합니다. 또 기지를 발휘하여 구두창에 숨긴 금붙이를 찾아 나찌에게 바치기도 합니다. 나찌 병사들을 흡족하게 해주고 자신은 의심을 모면하지만, 양심이 찔릴 수밖에요. 총명하고 감성이 풍부하던 소년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영화 말미는 다시 경건한 미사 장면. 성찬식에서 쟁반을 들고 빵떡을 돌리던 신부님은 소년의 눈을 바라봅니다. 흔들리는 눈, 당장 울고싶을만큼 괴로운 소년의 마음정식 미사 시간이라도, 동그란 빵떡, 주님의 몸을 받아 먹을 수가 없는 참담한 심정이겠지요. 이 때, 신부님은 조용히, 본체가 아닌 마름모꼴 가장자리를 소년에게 건넵니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죠. ‘괜찮아. 주님의 가장자리(an edge of the Lord).’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그 장면이 선명하군요. 이 영화는 성만찬의 의미에 대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에 대해, 특히, 교회 문턱을 넘나드는 신자들의 인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소년이 별 번뇌가 없이 해맑았을 때에는 미사 시간에 주님의 몸을 잘 받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만찬의 의미를 모른 채 먹는, 무의미한 종교 의식일 뿐입니다. 소년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고 났을 때, 양심이 고통하고 스스로 죄의식을 느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설 수 없을 때, 바로 그 때가 소년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정작 그 때에는 예수님의 몸을 먹지 못하여 가장자리를 먹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는 이 반응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종교적 성향,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들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 복음 진리와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기 이전, 인간 이해의 중차대한 허점, 복음에 대한 무지를 반증하는 것이지요.

소년은 죄에 대한 인식이 생겼으나 그런 자신를 위해 십자가에서 형벌 당하신, 그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살이 찢기시고 피를 쏟으신 예수님은 믿지 못하는 상태이지요. 소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격 없는 자들에게 일방적인 은혜로 죄사함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성만찬의 진정한 의미대로 눈 질끈 감고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하며 동그란 빵떡, 온전한 주님의 몸을 받아 먹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화평을 누렸어야 합니다. 신부님은 이제 왜 네가 주님이 필요한지 알겠지?’ 하며 둥근 빵떡을 먹여주셨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을 영화일 뿐이고, 저는 그 영화 자체로 많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하나님께 대한 오해, 복음에 대한 오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모순된 이해를 갖고 있는 신자들의 현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 ~ 그렇게 쉽게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엉터리!!!’라고 콧방귀 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실을 믿는다는 것, 일견 쉬워보이고, 마음만 먹으면 될 것 같은 그 인식의 변화그것이 인간의 힘과 의지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복음은 우리의 상식과 본능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역설 중에 역설입니다. 죄의 자각 없이는 십자가도 구원자도 복음도 필요가 없습니다.  죄의 자각 후에도, 주님의 몸을 먹지 않으면, 십자가를 나를 위한 것으로 깨닫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식한 상태에서, 감히, 뻔뻔스럽게도,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 그 놀라운 은혜를 받아 먹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오늘의 말씀

출애굽기 12: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출애굽기 12: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Q1. 출애굽기 5장을 읽어보세요. “내 백성을 보내라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파라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그로 인해 이집트에는 어떤 재앙들이 닥쳤습니까?   

 

Q2. 출애굽기 11장과 12장을 읽어보세요. 열 번째 재앙은 무엇이었습니까? 죽음의 사자를 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Q3.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을 어떻게 기념하셨습니까? 떡을 떼고 포도주 잔을 나누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핵심 짚어보기

하나님은 메시아가 나올 혈통, 이스라엘이라는 구체적인 민족을 태동시킬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들 하나 없는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주마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후손들이 이방 땅에서 사백 년 간 노예 생활을 할 것이라 예언하신 것입니다. 복덩이로 만드시고 축복하겠다 말씀하시면서, 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노예 생활을 경험하게 하신 걸까요? 어느 모로 보나 고생스럽고 수치스러운 흑역사인데, 왜 그런 어둡고 긴 터널을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대대로 겪게 하셨을까요?


출애굽 사건은 구약 속의 복음이라 불립니다. 구약 시대에 노예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강력한 파라오의 손에서 놓여나는 것은 영적인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죽음의 세력 아래서 해방되는 사건의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힘으로는 파라오의 손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파라오를 치시고 그 백성을 해방시키셨듯이, 오늘날의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해 내십니다.


한편, 아브라함 때부터 이미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가나안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노예 생활 4백년 동안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까지 그득 그득 죄의 물결을 차올렸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그 한계선을 넘고 심판의 때가 되었을 때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야곱 가족이 이집트로 옮겨온 지 장장 43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 주민들 입장에서는 극심한 우상숭배와 악행에 대해 심판받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작정하신 때가 되어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0,11)”


물론, 파라오가 이스라엘 노예 민족의 노동력을 순순히 포기할 리 만무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하며 이렇게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오히려 노예들이 한가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라며 노동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결국, 파라오의 교만한 고집을 꺾기 위해 이집트 땅에는 열 가지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파라오는 결국 코가 납작해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1. 처음에는 이집트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나일강이 피로 변하였습니다. 잘 깎은 나무 그릇에 성수로 떠 둔 물까지, 다 핏빛으로 변하고 악취를 풍겼습니다. 나일강을 지키는 신 하피가 수치를 당한 사건입니다.

2. 두번째로 개구리 재앙이 임했습니다. 풍요와 다산을 지배하는 개구리 두상의 헤크트여신은 이 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3. 세번째로 티끌이 변하여 이, 벼룩, 빈대, 모기로 변하여 온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이집트 주술사들을 돕던 주술의 신 토트가 그 무력함을 드러내었습니다.

4. 네 번째는 파리 재앙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살던 고센 땅은 구별되어 재앙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우주의 창조자라 부르던 프타도 이 재앙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5. 다섯번째는 이집트인들이 우상화하여 섬겨 왔던 각종 짐승들에게 악질이 발생하여 죽었습니다. 가축들이 죽어나가는데 암소의 여신 하토르나 황소의 신 아피스는 침묵, 또 침묵했지요.

6. 여섯번째는 재에서 독종이 생겼고, ‘이시스를 비롯한 여러 치료의 신들이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집트의 마술사들까지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어서 히브리 백성을 놓아주라고, 이러다가 다 죽게 생겼다며 파라오를 재촉하게 됩니다. 

7. 일곱번째로 우박과 맹렬한 불덩이가 내렸습니다. 이집트의 기후를 지배한다고 믿었던, 번개의 신 레슈푸’, 비와 천둥의 신 토트가 그 무능함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때, 우박 재앙에 대한 경고를 듣고 미리 피신한 자들은 살아남았지만, 이제껏 겪어보고도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한 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8. 여덟번째로, 메뚜기떼가 나타나 얼마 안 남은 곡물을 싸그리 훑었습니다. 곡식을 지키는 신역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9. 아홉번째로는 이집트 전역에 삼일 동안 캄캄한 흑암이 뒤덮었습니다. 이는 이집트의 대표 우상인 태양신의 무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 이상 톰슨 주석 성경, 장로회총회 사이트 참조)

 

이상의 아홉 가지 재앙들은 이집트의 수많은 우상들을 차례 차례 무너뜨리고, 이들이 얼마나 무력하고 헛된 것들인지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재앙의 피해가 극심할 때는 잘못했다, 보내주겠다했다가,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어주시면 약속을 번복하였습니다. 아홉번에 걸쳐 큰 재앙을 겪으면서도 그는 끝내 우주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알량한 거부권을 발동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은 돌이킬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재앙, 바로 열 번째의 장자 재앙을 맞게 됩니다.


장자 재앙은 밤중에 이집트 온 땅에 있는 모든 장자들 - 맨 위로는 파라오의 첫아들로부터 말, 나귀, 염소, 토끼의 첫 새끼까지 이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앞의 아홉가지 재앙들은 모세를 통해 명하셨지만, 마지막 장자 재앙은 하나님께서 직접 죽음의 사자들을 통하여 행하셨습니다.


그 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집집마다 비명과 곡소리가 들렸습니다. 장자가 없는 집에서도 첫번째로 태어난 가축들이 죽어나갔고, 나일강에는 악어와 물고기의 사체들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어떻게 이 재앙을 피했을까요? 네번째 재앙부터는 이스라엘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았지만, 이번은 달랐습니다. 민족적 혈통이나 고센 땅이라는 지역적 구분이 아닌, 특별하고도 유일한 구원의 조건이 요구되었습니다.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당일날부터 유월절 의식으로 정해졌습니다.


유절절의유월이란 ‘pass over’, 넘어가다’, ‘지나가다’, ‘통과해가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첫번째 유월절을 어떻게 준비할지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 달 열흘에 흠이 없고 튼튼한, 일년 된 숫양이나 수염소를 택해야 합니다. 희생될 짐승의 숫자는 그 고기를 먹을 사람 수에 따라 결정됩니다. 만약 양 한 마리에 비해 먹을 가족 수가 너무 적거나 하면 이웃집과 합쳐 계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빠짐 없이 이 희생 양을 먹는 데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렇게 희생될 짐승을 택하여 십 사일까지 잘 간직했다가, 십 사일 저녁 해질 때 그 짐승을 죽입니다. 그리고 희생된 짐승의 피를 집 문 양쪽 기둥과 문 위에 발라야 합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그 문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습니다(출애굽기 12:3~7, 22 참조).


이 희생 짐승의 피가 구원의 비결이었습니다. 집 문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발려 있어야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고, 문 안에 거하는 장자들이 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Agnus Dei (하나님의 어린양), Francisco de Zurbarán, 1635~40. (, 출처: 위키피디아)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바르는 모습 (, 출처: http://truthnlove.tistory.com/828)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sign)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2,13)”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통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를 알렸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 여호와의 말씀대로 유월절 밤을 준비했습니다. 사흘 간 집 안에서 짐승의 상태를 살피며 잘 간직했다가, 14일 해질 녁, 양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페인트 붓처럼 잎사귀가 많은 우슬초로 짐승의 피를 문 기둥과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그 밤, 모든 가족들과 가축의 첫 새끼들을 모두 집 안으로 모으고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그 밤을 보내었습니다.


일러스트 : John Song


동이 터 올랐습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여 화를 모면한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관찰하며 발빠르게 따라한 다른 민족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반면, 경고를 무시했던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큰 슬픔과 절망, 공포의 아침이었습니다. 태양의 아들이라 자처했던 파라오는 장자를 잃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을 더 붙들어둘 마음이 싹 사라지고, 모세 일행을 불러 어서 히브리 사람들을 다 데리고 이집트 땅을 나가달라고 재촉했습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출애굽기 12:31b,32)”


앞서 아홉 가지의 무서운 재앙들 앞에서도 목을 뻣뻣이 하고 버티던 파라오는 결국 장자 재앙에 와서야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파라오의 압제 하에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죄와 사망의 세력에 신음하는 인간의 실존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죽음의 사자가 심판을 하는 열번째 재앙에 와서야 파라오가 항복한 것은, 우리 영혼을 얽어매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영적인 현실, , 죄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죄에 대한 심판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민족과 지역에 상관 없이 죽음의 사자가 심판의 칼날을 휘두른 것처럼, 실상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할 테지만, 유월절 예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면할 유일하고 절대적인 구원의 방법,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장차 있을 십자가 사건처럼, 열번째 재앙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와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긍휼이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 장자 재앙 (실은 장자 뿐 아니라 온 인류가 심판대 앞에 서야 하지요)과 유월절 어린양을 통한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과 해방의 대로는 바로 순한 어린양처럼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희생 위에 닦여진 것이지요.

 

출애굽기의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장차 어린양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죄와 죽음의 세력이 깨지고 인류가 해방될 날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예식을 지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낸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진정한 유월절의 주인공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죽음의 사자, 심판의 칼날 앞에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내가 이미 대신 죽었다하며 우리를 막아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는 죄를 빌미로 죽음 권세로 인생들을 괴롭히던 강력한 사탄의 힘을 무력화시킨 사건입니다.


문에 희생된 짐승의 피를 바르고 그 문 안에 머물러 있어야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듯, 예수님의 희생의 피가 있기에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이 피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 각 사람이 희생된 어린양의 고기를 먹었듯,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희생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유월절 예식에 참여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몸이 다 찢기시고 피를 다 쏟기까지 고난 당하시며,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주신 구원의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팡세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손해를 보거나 희생을 해준 덕분에 큰 어려움에서 벗어나본 적이 있나요? 그에 대해 어떤 고마운 마음이 들었나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한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