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큐레이션 : Mary, Did You Know? (lyric : Mark Lowry)
Pentatonix가 부른 캐롤입니다. 가사를, 특히 맨 마지막 소절을 음미해보세요.
'The Great I AM'은 누굴 가리키는 이름일까요?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walk on water?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save our sons and daughter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come to make you new?
This child that you've delivered, will soon deliver you.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give sight to a blind ma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calm a storm with his hand?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walked where angels trod?
When you kiss your little baby, you kiss the face of God.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The blind will see, the deaf will hear, the dead will live again.
The lame will leap, the dumb will speak, the praises of the lamb.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Lord of all creatio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rule the nation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heaven's perfect Lamb?
That sleeping child you're holding is the great I AM.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오늘의 말씀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 하라 |
Q1. 출애굽기 1장~3장을 읽어보세요. 주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이름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Q2. 요한복음 10~15장을 읽어보세요. 예수님은 모세에게 말씀해주신 하나님의 이름 ‘I AM’을 이용하여 어떤 사실을 표현하셨습니까?
핵심 짚어보기
우리는 이제까지 인류 고대사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창조와 타락, 대홍수 심판과 바벨탑이라는 중요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주목하여 부르시고, 이스라엘이라 이름하는 한 민족을 태동시키시고, 인간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시작된 메시야 예언을 점점 더 구체화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얻은 아들 이삭, 쌍둥이 동생 야곱, 요셉을 파는 데 주동자 역할을 했으나 변화되어 희생 정신을 보여준 유다까지, 모두 ‘족장 시대’를 살던 인물들입니다. 민족 국가가 생기기 전, 강력한 족장을 중심으로 가족 공동체 단위로 살던 시대였지요. 그러다가 야곱의 가족 70명은 창세기 말미에 창세기 말미에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집트는 요셉의 해몽과 지략으로 7년 대풍 때 예비를 잘 하여 7년 흉년의 때를 생존해내고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요셉 덕분에 이집트로 야곱 일가는 이집트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고센 지역에서 독립적인 문화를 키우고 혈통이 보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수가 번성하여 ‘히브리 민족’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이 일차적으로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 아브라함에게 다른 예언도 주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세기 15:13b,14)”
과연, 세월이 흘러 요셉의 공로를 잘 모르는 후대 파라오들이 등극하자 야곱의 후예들에 대한 처우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인구가 불어가는 히브리 민족을 경계하기 위해 이들을 노예화 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국고성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노역에 동원하여 무거운 짐을 지우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히브리 민족은 더욱 번성하고 인구가 불어날 뿐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출산을 돕는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아예 태어난 남자 아기들을 강물에 던지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집트 왕자에서 양치기로
그런 절박한 시대에, 레위 지파 중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이 출중한 아기를 석 달을 숨겨 키웠습니다. 그러나 울음 소리가 커지자 아기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 갈대 상이에 띄웠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이집트 궁궐에서 공주의 양자로 자라게 됩니다. 모세는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유모로 위장한 모친의 영향인지, 동족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청년이 된 어느 날, 모세는 히브리인을 괴롭히던 이집트 관리를 죽이게 되고, 이 사실이 탄로 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고 맙니다.
일신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동족을 도왔건만, 그의 인생은 일순간에 전혀 원치 않는 곁길로 빠지고 맙니다. 화려한 궁궐에 살던 촉망받던 사람 모세는 간 곳 없고,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40년 동안을 양치기로 썩게(?) 됩니다. 그는 아마도 어떻게 하면 압제받는 동족을 구할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 땅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탄식과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건만, 모세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타국에서 나그네 신세가 되어 말 못하는 양들과 함께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자로 무려 40년의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양떼들을 이끌며 풀을 뜯기던 모세는 우연히 호렙산(혹은 ‘시내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저 멀리 보니, 떨기나무(아카시아 종류 가시덤불)에 불꽃이 타오르는데, 신기하게도 나무가 타들어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가 보려고 가까이 다가서는 모세… 그 때,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출애굽기 3:4~6 참조)”
놀라고 두려워 얼굴을 가린 모세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고통 당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고통을 똑똑히 보고 알고 있으며, 이제 그들을 이집트인의 손에서 구출해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3:10)”
모세는 깜짝 놀라 여쭈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1)”
그는 혈기 왕성하고 의협심과 동족애가 들끓던 위인에서, 이제 아무것도 아닌 자, 그런 엄청난 일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낮고 작은 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지난 40년 동안 모세의 이런 변화를 기다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하나님은 모세의 용기를 북돋우시며, 아주 특이한, ‘미래형’ 증거를 들이대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3:12)”
이 대목에서 모세는 우리 모두가 궁금해 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여쭈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13)
조상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 그 선조 아브라함을 불러 그의 인생을 이끄신 하나님을 들었을 터이지만, 모세는 더 직접적으로, 더 구체적으로, 그에게 그런 막중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는 얍복강에서 밤새 씨름하며 축복을 해달라고 졸랐던 야곱이 했던 그 동일한 질문이요, 바로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어떠합니까?
나는 나다 (I AM THAT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I AM THAT I AM :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 (KJV) (3:14)”
영어로 보면, ‘I AM THAT I AM, ‘I AM WHO I AM’, 해석하자면, ‘나? 나는… 나인데…’ 하는 뉘앙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I AM’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어 BE 동사가 이렇게 보충해주는 말 하나 없이 쓰이는 용례는 드물죠. 창조주 하나님을, 그 어떤 말로 설명하고, 어떤 보충어를 나열하면 피조물이 파악할(?) 수 있을까요?
“내 이름을 달리 어떻게 말할 수가 없구나. 아, 그렇지! 너희는 모두 내가 만든 피조물들이니까, 근본적인 차이점을 들라면, 나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야. 너희와 달리, 피조된 자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야.” 하시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당신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3:15)”
4세기의 침묵기를 거쳐 이제 이스라엘 민족에게 당신을 계시하실 타이밍… 이집트의 노예 상태인 히브리 민족을 탈출시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국가를 이루어가실 그 장구한 역사의 서막을 여시는 시점에, 하나님께서도 첫인상이 어떨지, 얘들이 어떻게 하면 오해 없이 내 모습 그대로 알 수 있을까, 고민이 되셨겠지요.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에 대한 설명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 역사에 깊숙이 들어오시고, 이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고,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당신의 이름의 명예를 걸고 그것을 지키실 하나님의 결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에덴 동산에서부터 ‘여자의 후손’을 약속해 주신 하나님, 모세와 히브리 노예 민족의 오랜 조상 때부터 함께 하신 하나님, 많은 시간과 에피소드를 함께 했고, 약속과 그 성취의 스토리가 있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기다리다 지쳐 낙심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밤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며 약속을 다짐하신 하나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위기를 만날 때 편들어 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길들여진, 함께 한 추억이 있고, 이들과 함께 이루어갈 미래의 약속을 성취하실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위대한 인물로 축복하시면서도 그 후손에 무려 4백 년을 다른 나라의 압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모세를 통해 이루실 EXODUS, 이집트 대 탈출 사건은, 히브리 민족의 강력한 파라오의 압제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출되었듯, 우리 힘으로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죄와 죽음의 철장을 깨뜨리고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동영상 큐레이션 : 하나님의 이름 야훼의 비밀
https://www.youtube.com/watch?v=858kt8cKjtU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히브리 파자법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온다고 합니다.
"손을 보라, 못을 보라!!!"
일러스트 : John Song
예수님의 자기 선언 “I AM (에고 에이미)”
예수님은 워낙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셨고 종교 지도자들 중 안티들이 많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신성모독죄'라는 죄명으로 십자가 형을 구형받으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는 거죠. 왜 그랬을까요?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모세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 ‘I AM’ 화법을 참조하여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I am the bread of life)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니 (I am the light of the world)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I am the door of the sheep)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7)
“나는 선한 목자라 (I am the good shepherd)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5-2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나는 참포도나무요 (I am the true vine)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5:1-2)”
(이미지 출처: http://my.salvos.org.au/resources/worship-leaders/the-i-am-statements-of-jesus/)
성경 원문과 이스라엘의 종교적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이런 성경적인 맥락을 분명히 인식하신상태에서 ‘I AM’을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종교지도자들 역시 'I AM'을 이용한 예수님의 자기 선언을 자신을 하나님과 동격으로 주장한 취지로 정확히 파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른 것이 있다면, 인간이 되어서 감히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신성모독을 하는 자가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었고,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 있으셨다는 점이었죠.
본래 하나님이신 분이, 작고 연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 대서사시를 통해 보여주신 해방과 구원의 사건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지요.
이 일을 위해 The Great I AM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오셔서 그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 높이 달리십니다. 그리고는 거룩하신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인류의 죄악을 향한 진노의 잔을 다 받아 마시셨지요. 예수님은 그 모진 십자가를 참으사 우리의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들이 천국으로 가는 문, 목숨 걸고 양떼들을 지키는 선한 목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요 생명이 되셨고, 부활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참 생명을 얻고, 좋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들처럼 주렁 주렁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현대, 우리 현실 속의 영적 전쟁
여기서 한 가지! 현대에는 정 반대의 동기와 목적으로 'I AM'을 도용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아래 보시는 책은 <긍정의 힘>, <잘 되는 나> 등 기독교 복음의 본질에 맞는 것인지 갸우뚱한 책들로 명성을 떨치던 조엘 오스틴의 최근 신작입니다. 두둥~~~
조엘 오스틴의 신간 ‘The Power of I AM’(좌), SM 엔터테인먼트의 다큐영화 ‘I AM’ (우)
조엘 오스틴 뿐 아니라 각종 강연과 세미나에서 수많은 뉴에이저, 과학자, 유명인사들이 ‘I AM’을 구호를 외치고 마인트컨트롤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마술을 일으킬 수 있는 비밀스러운 주문인 것처럼 자꾸 “I AM”을 반복하라고 부추깁니다. 우리나라도 SM의 다큐 영화 제목에서부터, 연예인들이 입고 나오는 티셔츠, 머그잔, 포스터 도안 등, 곳곳에서 맥락에 상관 없이 ‘I AM’으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에 친숙해지도록 호루스의 눈인 전시안(All-Seeing Eye)을 의도적으로, 자주 노출시키는 전략과 같습니다.)
우연한 유행인 것처럼 가장하고, 얼핏 보면 별 나쁜 뜻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성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I AM’을 부지불식 간에 도용하게 하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며 허영심을 부추기던 옛 뱀의 거짓말,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속임수지요.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 최면이나 달콤한 자기 긍정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원일 것입니다. 헛된 바람만 일으키고는 결국엔 멸망 길로 인도하는 넓고 편한 길은 도처에 널렸습니다. 현란하고 달콤한 속임수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을 노략질하려는 적군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 되시는 예수님이라는 천국 문, 바로 십자가라는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팡세: 나의 생각을 적어봅시다
주변에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신인사상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나 디자인 도안을 본 경험이 있나요? 요즘 메스컴에서 유행하는 수퍼맨, 영웅 시리즈, 신인 합일 사상, 우주와 하나됨을 추구하는 뉴에이지 사상, 신인류, 초인 사상,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그리고 ‘~느님’, ‘~신’, ‘여신’, ‘갓~’ 등의 유행어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인정하고 높이는 것은 인간에게 굴욕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존엄함을 유지시켜주는 것일까요, 의견을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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