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위대한 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막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막 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논쟁을 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시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의 마음에는 영광과 존귀함을 받고싶은 욕구가 가득하여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등극하시면 누가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그 지위에 합당한가 경쟁하였습니다. 떡 주실 분은 예수님이신데, 제자들 사이에서라도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미리 여론전을 펼치고 결정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길에서 토론을 벌였는지 물으시자마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는 주님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겨우 자기들의 욕심과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판단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들이 정말로 궁금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를 영의정, 좌의정, 총리 감으로 인정하시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차마 그렇게 여쭙기 부끄럽고, 또 혹시 기대를 파싹 깨버리는 대답을 들을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 여쭈었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발상의 전환입니다. 최종적인 판단자, 떡 줄 당사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판단이 궁금해진 것입니다.
막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차분히 앉으시고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중대한 교훈이요 가르치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자가 되고, 첫째가 되고, 일등이 되고자 하는 욕망 자체를 꾸중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욕구, 위대함을 추구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정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를 심어주신 분이십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예수님은 '첫째가 되고자 하는 마음과 반대로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실로 충격적인 역설입니다.
꼴찌처럼 겸손히 낮아지는 것, 뭇 사람을 섬기는 것, 그것이 오히려 그 사람이 첫째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거룩하신 분, 성자 하나님의 지위를 가지신 분이시지만, 인간이 되시고 그 영혼이 죄로 병들어 냄새나고 더럽고 가까이 하기 부담스러운 죄인들 곁에 먼저 찾아오시고, 함께 계시며, 제자로 키우셨습니다. 발을 닦아주시고, 대신 수치와 배반과 고난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이름, 만유 위에 뛰어나신 이름으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눅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마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은 또한 섬김을 받을 가장 큰 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어린 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이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의 특징은 자기를 낮추는 자라는 것입니다. 당시 어린아이는 노동력도 안 되고 오히려 먹여주고 입혀주고 손이 많이 가는 존재로서 존중을 받지 못했습니다. 철이 없고 지혜가 없어 못 알아듣는 존재, 가르치고 인내해주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한 마디로, 내가 얻을 것은 없고, 섬기고 수고할 것만 많은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린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애 취급 당하면 그런가부다 하고 인내해야 했습니다.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이해와 긍휼을 구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종의 자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 17: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염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눅 17: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눅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천국에서 위대하다고 인정받는 자는 자신을 종으로 여기고, 임무를 다 수행하고 수고한 후에도 이를 당연히 여기고, 자신을 무익한 자라 여기는 겸손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는 인간적으로는 무리로 보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고자 아무리 원해도 자기 의지로 할 수 없는 경지로 보입니다. 도대체 자존심 쎄고, 자기 명예를 금쪽같이 여기는 우리 주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의 관계가 영적으로 바로 잡혀야 가능합니다. 죄인으로서 구세주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맛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을 낮추고, 종으로 여기고, 충성을 다 한 후에도 당연히 할 일을 했노라, 무익한 종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도, 그 영적인 지식조차 자기 자랑으로 삼고 자기 영광을 위해 쓰려고 하는 유혹이 따릅니다. 그 정도로 옛 사람의 안 좋은 습성이 틈만 나면 다시 올라오곤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순간마다 자꾸만 올라오는 교만과 자기중심성과 높임 받고 섬김 받고싶은 이기심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주님, 제가 높아지고자 하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잘 나가는 사람, 유명한 사람, 인정받는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데 왜 안 되나, 왜 이럴까, 시기 질투가 나고 자의식이 듭니다.
어린 아이처럼 별로 중요치 않은 사람,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을 때, 속이 상하고 서글퍼집니다. 별 것도 없으면서 인정받고 싶어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높아져야 할 자리에 자꾸 저도 꼽사리끼고 싶어합니다.
주님, 저를 다만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가르쳐 주신 교훈을 잊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꼴찌가 되고, 어린아이가 되고, 종이 되고, 겸손한 마음과 자세와 언행을 갖게 도와주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주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되고 지혜롭고 착한 종이 되게 도와주시고, 그러고도 겸손할 수 있는 엄청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제 마음에 무시받은 데 대한 상처와 서글픔과 분노와 다투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으신 분이신데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고난과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연약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죄인들을 인내하시고 존귀히 대해 주셨습니다. 죄 많은 저를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상처와 분노가 다 치유되고, 자의식을 버리고 주와 복음을 위해 건강한 자아를 갖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영혼, 섬길 수 있는 영혼을 찾아, 더 낮아지고, 그 사람을 높이고 존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을 훼방하지 않도록, 겸손과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섬기고, 주님을 뵈올 때, '무익한 종입니다' 머리를 조아리는 마음을 소유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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