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신앙 고백 후에, 그리스도로서 버림받고 고난 당하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첫번째 계시에서 제자들의 반응은 놀람과 당황함과 강력한 반발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가르치고 또 가르치십니다.
마 17: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마 17: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예수님은 인자되신 예수님께 장차 일어날 크나큰 사건,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두번째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두 번째 또 말씀하시니 그저 마음이 무럽고 근심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는데, 함부로 반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눅 9: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묻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후대에 누가복음을 기록한 저자 누가는 십자가와 부활의 도가 이때까지는 제자들에게조차 깨닫지 못하도록 숨긴 바 되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은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비유로, 직접적인 예언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모형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학의 모형론은 이러한 내용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꼭 어디 신학박사, 교수 등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더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야기들도 머나먼 옛날 얘기, 교훈과 지혜를 얻기 위한 텍스트 정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있는 나의 구원자, 우리들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의미있고 소중한 텍스트가 됩니다.
창세기만 빨리 훑어보아도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어떻게 계시되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 생명나무요, 생명수요, 아름답고 영양좋고 맛좋은 양식이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에덴 그 범죄의 현장에서부터 예언해주신 여자의 후손으로서 뱀의 머리를 부수시지만, 아담과 하와 대신 저주를 담당하시기 위해 발꿈치를 상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입히셨고, 장차 그 짐승처럼 생명을 내어주실 분이십니다.
더 나은 믿음의 제사로 하나님께 열납되시지만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이 가리키는 분으로서, 아벨보다 더 나은 피를 흘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죽음을 건너 뛴 에녹이 증거하는 바, 영생의 근본, 우리가 영원히 함께 동행하고 그 존전에 설 영원한 나라의 주인공이십니다.
노아와 그 가족을 심판 가운데서 건지신 든든한 구원의 방주요,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 날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무지개 언약의 근거이십니다.
허물을 덮어주고 가려준 셈의 후손이자 노아가 찬양한 바, 셈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뭇 생명들의 첫열매시요, 복의 근원이십니다.
믿음이 없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뭇별과 같은 생명들이 탄생하게 하시는 근거이십니다.
레위 지파, 아론의 인간 혈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열을 좇는, 자존하시고 영존하시는 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시는 말씀을 넙죽 믿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모든 믿음의 후손들의 믿음의 내용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횃불 모양으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시며 반드시 약속을 지키리라 생명을 내걸고 언약을 주신 분이십니다.
할례 제도가 가리키는 실체로서, 사람의 힘으로 낳은 생명은 부정한 생명, 영적으로 죽은 생명임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새 생명을 받아야 하며, 진정한 언약 백성은 그리스도를 믿어 마음의 할례를 받는 자들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 영적 이스라엘로서, 하늘나라 유업을 받을 자들입니다.
노년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으로 주신 이삭이 가리키는 약속의 자녀들의 큰 형님, 큰 오빠이십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어린양이십니다.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근거,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시는 분,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갈을 만나주신 분이요, 룻 가족을 소돔 성에서 건져내신 이시요, 야곱과 씨름해주신 분이십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바, 인생들이 의지하여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하늘 사다리가 되시는 분,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요셉의 두 번째 꿈의 주인공, 즉, 형제들의 주를 넘어 부모님, 아니, 부르심을 입은 천하 만민이 엎드려 경배할 만민의 주가 되십니다.
요셉이 꿈을 해몽해준 운명이 갈린 관원들처럼, 살고 죽는 영원한 운명의 기준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감옥의 요셉이 바로 다음의 2인자가 된 것처럼, 하늘 영광 버리고 가장 낮은 곳까지, 죽음의 자리, 지옥에까지 내려가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이십니다.
베냐민을 위해 노예됨을 자처한 유다처럼, 자식을 잃은 하나님 아버지의 슬픔을 차마 묵과할 수 없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생명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죄의식에 시달리는 형들이 불쌍하여 눈물짓는 요셉처럼, 자신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내어준 죄인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먹이시고 입히시고 영광스러운 아들의 지위으로까지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유다의 사자로서, 잡은 것을 놓치지 않으시고, 원수를 완전히 섬멸하시는 승리의 주님이십니다.
그 모든 놀라운 승리와 구원의 역사가 저절로, 대가 없이 이루어집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자유를 주신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죄의 삯으로 생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대안, 더 만족스러운 대안, 인간의 실패로 인해 영영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의 방법을 취하셨습니다.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수 있는 방법, 진정한 승리의 방법, 긍휼을 택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용납을 가능케 하기 위해, 죄인들의 생명 대신 예수님이 생명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성자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셨습니다. 저줏거리, 심판과 진노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은 실패요 원치 않는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반드시 겪어내셔야 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세주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진리를 알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에서 멀고, 시기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저에게까지 이 귀한 복음을 전해주시고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십자가를 작정하신 삼위 하나님의 마음, 이 땅에 오셔서 인자의 삶을 사시며, 한 걸음 한 걸음 흔들림 없이, 회피함 없이 다가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너 자신이나 어서 구원해봐라!' 하는 조롱을 견디시고 형용할 길 없는 고통을 참으시며 십자가에 매어달리셨던 예수님을 생각해봅니다.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이기에,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이기에 이러한 일을 계획하고 또 성취해내셨을까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주님, 제자들처럼 저 역시 십자가를 꺼려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묻기도 꺼려하는 연약한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의 창조주 되시고 저를 잘 아셔서 저를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무거운 죄짐과 인생짐을 가져가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그리스도요 스승님으로 따르며,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배우는 인생으로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봄날, 제게 주신 하루의 생명을 잘 누리고 감사하며, 저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붙좇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더욱 깊이, 새로이 알아가길 기도합니다. 만민의 구주, 이 소자의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복음서] 148.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 (마 18:1~4, 막 9:33~37, 눅 9:46~48, 눅 17:7~10) (0) | 2024.04.12 |
---|---|
[사복음서] 147. 성전세/물고기 입 속의 동전 (마 17:24~27) (0) | 2024.04.11 |
[사복음서] 145.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 (마 17:14~21, 막 9:14~29, 눅 9:37~43, 눅 17:5~6) (0) | 2024.04.08 |
[사복음서] 144. 엘리야에 대한 질문 (마 17:9~13, 막 9:9~13) (0) | 2024.04.06 |
[사복음서] 143.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심 (마 17:1~8, 막 9:2~8, 눅 9:28~36) (0) | 2024.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