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가 진정으로 복된 자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떤 자들이 소유할 것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눅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우리는 가난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가난으로 인해 고난과 서러움을 당한 이들에게 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겸손해지고 구세주 예수님께로 인도되기 좋은 유리한 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도 살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니, 가난의 고난이 도리어 유익이 됩니다.
눅 6: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 지금 우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가 어쨋든, 과정이 어쨋든, 지금 현재 주리고 우는 상황에 처해있다면, 비참한 심정이 들 것이 분명합니다. (가끔 특이한 사람이 있어서, '누가 뭐래도 내 방식대로 하리라' 고집하고 교만을 떨래야 떨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꼴을 보고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낮아진 마음,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 분수를 깨달은 자들에게 비로소 오래 기다려셨던 열린 구원의 문이 눈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긍휼의 손을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버전을 보면, 가난 중에서도 심령, 즉, 마음이 가난한 것이 천국을 얻는 길과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란 누가복음 버전에선 '우는 자'로 나왔습니다. 눈물을 방방 흘리며 우는 자는 얼마나 슬프고 애처로워 보입니까? 정의가 바로 서지 않고 진실이 가려진 채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아십니다. 하늘의 위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자기 것 건사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뢰할 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십니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불의함으로 인하여 애가 타고, 어떻게 하면 옳다 하심을 얻을 수 있을까 갈망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배부르게 하십니다. 우리의 의, 예수님으로 인하여 완전한 의를 누리게 하십니다.
예레미야 23: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יְהוָ֥ה ׀ צִדְקֵֽנוּ׃, 여호와 치드케누)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허물진 죄인인지, 어떠한 은혜로 용서와 생명을 얻었는지 알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지 아닌지,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많이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하다보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오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고 하나님 뜻을 헤아리며 순종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때마다 순간마다 애쓰는 그 마음을 보실 때 얼마나 소중하실까요. 하나님도 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찾으시며 아끼시며 만나고자 하실 것입니다. 제가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절대선이 없이 자기중심적이 되고 각자가 선악의 판단자가 되어 갈등과 다툼과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누군가를 헤치고 죽이게 됩니다. 전쟁을 앞둔 두 나라가 외교 담판을 통해 극적으로 타협안을 체결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건진 것입니까. 화평케 한다는 것은 결국은 죽을 생명을 건지는 일이요, 지옥처럼 살 괴로운 관계성을 진정한 생명력을 누리는 천국과 같은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일이요,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을 지향하며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가 정말 화평케 하는 자들에 목마른 시대입니다. 갈등하고 반목하던 양자가 서로 오해를 풀고, 불신과 원망의 골이 돋아져 평탄해지고, 상대방을 신뢰하게 되는 것, 상대방의 의도를 좋게 해석하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화평케 하는 자들이 이 역할을 도울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열심히 정죄하고 낙인을 찍고, 변론을 펴도 거짓말이라며 불신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상대방을 악이라 규정하여 마음껏 미워하고 공격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는 것은 죽이고 파괴하는 힘을 더할 뿐, 생명을 살리고 화평을 도모하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제가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과 공생하는 방법, 상대방도 살리는 방법을 모색하며, 화평하고, 사랑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사고와 언행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힘과 능으로 어려울 때가 많은데,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때 주님께서 지혜와 능력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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