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여러 날들 중, 상큼한 여름 문을 연 , 기억하기도 좋은 '6월 1일'이라는 이름의 날 아침, 햇빛 아래 한껏 어여쁜 넝쿨 장미들에게도 아주 잠깐 눈인사만 한 채 달려서 조조로 본 영화.
내용에 대한 사전 이해도, 별 관심도 없었지만, 봉준호 감독 골수 팬인 남편이 하도 노래를 불러 당연히 봐야 할 영화가 되어 있었다. 칸느 노미네이팅에서부터 발표날인 새벽 3시 15분 전 일어나 시시각각 생중계를 하고, 매일 아침 검색은 물론, 그야말로 며칠 동안 봉보로봉봉 쏭쏠로쏭이었다. 영화 보고 나서는 더 이상 기생충에 대해 말 안하기로 만원 빵 약속도 받아 내었던 터... (허나 남편이 얼마나 입이 근질 근질 했겠는가. 그래서 영화를 보고도 하루 더 grace period를 주었다. 그 다음 날, 한 동안 잘 참나 싶더니... 남편 왈 : 기생충 말야, 개봉 첫날 관객만 50만이 넘었대! 나: 만원! 남편: ㅋㅋㅋ 나: ㅋㅋㅋㅋ)
미안합니다 오해했네요
보는 동안 내내 흥미진진했고,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 느낀 것은 불쾌감이었다.
안 그래도 골이 깊은 우리 사회의 현실 구석에서, 이를테면, 어른들의 일그러진 가치관의 얄팍한 부분만 쉽게 흉내내기 쉬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네이밍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쏘아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기생충'으로 묘사된 기택의 가족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점점 일이 커지는데도(처음이야 어쩌다... 라 변명하겠지만, 운전기사와 가정부는 모함하여 내쫓은 것 아닌가) 네 가족 중 그 누구도 양심에 걸려 갈등하거나 말리거나 하는 모습 없고, 갈수록 파렴치함과 가족 이기주의를 보이는 것이 못내 불쾌했다. 그런 모습이 저소득층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리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불평하자, 남편은 사회학적으로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좀 극단적일지 몰라도, 현실의 문제점을 드러내어 사회적인 각성을 일으키고 대책을 강구하게 하는 것이 목적일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빈부격차, 양극화 현상이 우리네 인생 문제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주제의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감독이 곳곳에 숨겨 놓은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재미는 있었다. 민규의 마음을 알면서도 기우가 다현의 마음을 이용하는 이유, 물에 떠오른 수석, 물로써 극대화된 부자와 빈자들의 대비, 파국으로 치닫기까지 기택의 눈에 비친 박사장의 행동 등... 단편적인 인물들의 행동 이면에 있는 인물들의 상호작용과 마음, 삶의 역사 등이 겹겹이 보였다. 그리고 유튜브의 리뷰들을 들으며 내가 발견하지 못한 점들을 배워가던 중, 문득, 내가 영화를 잘 몰랐구나,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구나, 놀라고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상도 못했는데, 나도 이렇게 기생충 리뷰를 쓰고 있다. (스포 주의!!!)
아래는 여러 유튜버들을 통해 얻게 된 단서들이다. (걸으면서 듣기만 한 터라 일일이 기록을 못 해서 정확한 인용이 힘들어, 각 유튜버들께 죄송하고 감사~)
1. 운전기사 기택이 자꾸 박사장에서 '아내를 사랑하시지요?', '아내를 사랑하시니까~' 하는 멘트를 날리고 그 때마다 분위기가 싸~해지는 이유를 몰랐다.
==> 어떤 유튜버는, 계급을 떠나 인간 보편의 정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기택에 반해, 박사장은 '선을 넘는 것'으로 여기고 쎄~한 얼굴로 새삼스레 갑을 관계를 인식시키는 것이라 했다. 아하~ 그렇지!
2. 소파 씬은 불필요한데 괜히 민망한 장면을 넣었나 싶었다.
==> 누군가 말하기를, 인간 보편의 욕구인 성욕을 통해, 상류층도 결국 똑같은 인간임을 보여준 것이라 했다. 오~ 그렇게 깊은 뜻이!
3.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었는데, 어떤 유튜버가 지적하기를, 계층간의 장벽을 허물고 기우를 한 인간으로 대하고 순수한 사랑을 준 인물이 다혜였음을, 그리고 수석에 머리를 맞은 기우를 구한 것도 다혜였음을 언급했다.
==> 비로소, 전면에 부각된 계층간의 간격, 돈의 문제 이면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저 뒤, 배경같은 존재로, 뭘 모르는 어리숙한 존재로, 연약하고 작은 존재로, 끔찍한 아비규환 가운데 기우를 들쳐 업고 동분서주하는 다혜에게서 해법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봉준호 감독의 진짜 메시지는 이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나도 팬심 퐁퐁~ 정말 대단하구나~ 이 영화는 정말, 장면 장면 분석해가며 숨겨진 퍼즐들 찾아내고 맞춰보고 싶은 영화다.
기생충 가족들 뿐 아니라, 모두까기 중
그 때 기억났다. 다혜와 짜빠구리
다혜가 짜빠구리 하나에도 자신에 대한 홀대가 느껴진다며, 왜 맨날 자기는 무시하냐고 귀엽고도 솔직한 어리광을 부릴 때, 약간 의아스러웠다. 복선을 만날 때의 관객의 긴장감? 그러면서도, 다혜 엄마가 '아, 그만해. 시끄러' 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무시해버리는 것을 들으며, 그 가정에서 굉장히 있을 법한 자연스러운 장면이요, 영화가 매우 현실성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 짧은 대화, 괄호 안에 든 사소한 문장처럼 목소리만 들려온 그 장면에서, 부유한 박사장의 집안에서, 가장 주인공 대접을 받을 듯한 아이들마저 그리 만족을 못 느끼고, 애정과 관심에 목말라 있는 것이 느껴진다. (다송이 역시 천재인 '척'을 하며 엄마의 관심을 끌고 있었고, 오히려 쫓겨난 가정부와 문자를 주고 받고 있었다. 카메라도 그 귀여운 얼굴 내내 안 보여주다가, 쫒겨나는 가정부를 염려하는 어두운 얼굴만 클로즈업 해준다) 부유한 사모님 연교는 많은 돈을 들여 영어며 미술이며 고액 과외를 하고, 심지어 그 집 개들까지 호강을 하였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행복이라는 오래된 진실...
더군다나, 돈에서 나오는 권력으로도 마음대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현실은 냄새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칼을 맞은 박사장의 죽음으로 폭로된다. 아무리 꽁꽁 철옹성을 쌓고 나와 너의 경계를 강화한들, 호사스런 삶을 누리기 위해서도 누군가 자본 권력의 약자들이 가까이서 노력 봉사 해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람이 필요한 사회적 존재이다.
다혜를 제외하고 세 가족이 보여주는 똘똘 뭉친 가족주의는 양극화든 다층이든, 계급을 나누고 차별화하면 인간 존엄을 잃어가는 사회 문제의 또 다른 결과가 아닐까. 이기심과 계산과 살벌한 경쟁의 룰, 거기서 오는 팽팽한 긴장과 고독과 피로에서 벗어나 좋을 때와 나쁠 때를 함께 나눌 운명공동체, 가족... (이 대목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떠오르는군...)
에로스 - 넘어설 수 없는 계급의 장벽을 부술 수 있는 불청객? 아니, 희망?
이 영화에서 왜 다혜가 해법인가? 일단, 모든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기심과 거짓과 부도덕함에서 다혜는 자유롭다. 자기, 혹은 자기의 확장인 '내 가족'을 떠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위해주는 인물이다. 계급 간의 장벽을 뛰어 넘어, 상대방을 인격으로 대하고 위해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상류층이냐 하류층이냐 하는 영화 전면의 구도에서 초월해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다혜가 특별히 훌륭한 사람이어서? 가치관이 있어서? 아니다. 순진한 여고생으로서, 이성이라는 것만으로도 떨리는 청춘으로서, 에로스의 욕구가 심긴 채 태어나 사랑을 갈구하는 한 인간으로서, 다혜의 마음은 이미 기우에게 빠져 있다. 멋지고 잘생긴 이전 과외 선생님 민규도 있지만, 왜 하필 기우에게?
이 과외 자리, 기필코 따 내야 한다는 필사의 절박함으로 보여준 기우의 카리스마 연기, 그 와중에 손목 한 번 잡힌 것, 그것이 이 순진한 다혜의 마음을 뒤흔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순수하고도 어리석은 에로스가, 기득권층이 오만가지 장치를 마련하여 꽁꽁 다져놓은 그들의 철옹성을 뚫는 강력한 창이요 화살이 된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고, 그 자식들이 가장 사고를 치는 것이 연애 문제이니...
신데렐라, 그 오래되고 익숙한 레파토리
족보를 생각해보면 신기하지 않은가. 혈연으로 이어지는 가족 관계, 그 속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들, 즉, 아내들은, 일반적으로 한 혈연이 아니다. 다양하다. 꽁꽁 계층 간 결혼으로 막지 않는 한, 다양한 배경, 다양한 형편의 사람들이 그 라인에 들어오고 하나로 합쳐진다.
연애사나 결혼과 관련하여, 수많은 신데렐라 드라마, 영화, 소설들을 떠올려보라.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하면서도, 왜 그리도 지치지도 않고 그런 스토리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일까? 팍팍한 인생, '제발 누가 나를 좀 건져주었으면' 하고 절규하는 힘든 인생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서 있고, 남성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문화적 배경 때문에 신데렐라 여주들이 많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다혜와 기우의 러브스토리는 더 진행될 수 없었지만, 잠시 상상을 해본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 집안이라도, 재산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불 붙은 젊은이들은 웬만해선 막기 어렵다. 우리 모두 익히 아는 레퍼토리가 떠오를 것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순진한 것들이, 상대방의 작은 눈빛, 미소, 장난끼 어린 몸짓 하나에도 그 매력에 흠뻑 빠져서는, 기성세대와 이 사회가 쳐 놓은 너무도 견고한 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는 '다 필요 없어! 너 하나만 있으면 돼!' 하며 되도 않는 소리들을 하는 것이다. 뒷 목 잡고 쓰러질 뿐, 이미 통제 불가능한 이 불장난 같은 에로스의 힘은, 기택처럼 칼을 쥐고 자신의 적을 쓰러뜨리지 않고도, 합리적인 이성과 중차대한 계산들을 쾅쾅 부숴버린다.
박사장네가 겉으로 나이스한 매너로 치장해도, 선을 넘는 기택의 냄새만큼이나 통제 불가능하게 자존심의 선을 넘는, 인간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마음, 그것을 감지하는 인격체의 모욕감과 분노... 양극화와 권력으로 찍어누르는 사회는 폭우에 역류하는 기택 네의 변기통처럼,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분노의 폭발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이미, '바퀴벌레' 소리에 아내의 멱살을 부여잡았다가 가까스로 유머 코스프레를 하는 기택의 행동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게 부글대고 있었다. 훨씬 강한 상대 앞에서, 룰대로 당해낼 수 없을 때 유혹 받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 폭력과 속임수... 그러나 거기에는 뼈아픈 후회가 따르고, 관계가 파괴되고, 도덕적 비난이 따른다. 나도, 남도 다 같이 망하는 방법이다. 폭력에 의한 계급 투쟁은 그 포지션만 다를 뿐, 물질만능 프레임 안에 똑같이 갇혀 있다.
그러나 철 없는 자들의 에로스는 '사랑'이기에 그 누구도 죄라 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이해관계에서 떨어져 있는 관객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둘을 뜯어 말리는 자들의 옹졸함과 이기심을 본다. 진리인 척 위세를 떨던 차별과 갈등과 반목의 모래성은 인간 본성을 좇아 사랑에 전부를 던지는 남녀에 의해 단번에 허물어져 버린다.
이렇듯 차별과 분리의 시스템에서 남녀 간의 불같은 사랑은 통제 불가능한 위협 요소이다. 또한 그러므로 구원의 희망이다. 기우와 기우 가족들은 '만약 기우가 이 집 사위가 된다면...'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신데렐라가 비참한 가운데서 왕궁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인생 역전이다. 사랑에 힘 입어 계급의 장벽을 뛰어 넘는 것, 신분상승하는 것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현실로 이루어주는 힘, 가난과 비참함의 깊은 수렁에서 건져 주는 '구원'과도 같은 것이다.
에로스, 조건을 다 떠나 오직 자신의 존재를 사랑해주는 상대방의 그 사랑, 설명 불가하고, 자신도 통제 불가능한, 그 신비롭기 짝이 없는 인간 마음의 작용, 그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의해 이 사회는 해일과 지진 덕에 순환을 이루는 해양처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은 양극화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순수한 사랑의 힘이 우리 눈의 비늘을 벗겨주고 견고한 벽을 허물어내는 희망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에서 기우의 진심은 알 수 없다. 아니, 이미 그 둘러싼 조건들 때문에, 기우의 마음은 순수한 사랑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다혜의 진심이다. 상류층에 있고, 사랑에 다른 이기적인 계산이 섞이지 않은 진심. 만약에, 만약에... 불미스런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고, 기우와 다혜의 관계가 발전했다면... 그러나 민규가 돌아와 기우의 정체를 폭로한다면... 그 다음에는 다혜가 키이다. 기우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자기 사랑을 지켜내느냐, 제 정신을 차리고(?) 기우의 부도덕함을 지적하며 마음을 닫느냐, 가능성은 모두 열려 있고, 다혜의 몫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자와 가장 낮고 천한 창녀와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면?
물질적 빈곤의 문제를 영혼의 비참함으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한 문제와 빗댄다면, 구원은 흐르는 물처럼 위로부터 내려온다. 다혜와 같은 상황에서, 아니 비교할 수 없는 큰 간극을 뛰어넘고, 더 몹쓸 짓을 한 연인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 안으며 자기 사랑을 지켜낸 예가... 있었다! 이 세상 역사 속에. 삼손이 그러했고, 호세아 선지자도 그렇고...
신데렐라 이야기의 끝판왕은 단연, 죄인들을 '사랑'하여 찾아 오시고, 십자가의 죽음마저 불사하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은 전혀 아름다운 구석이 없는 자들을 향해, 끝없는 반역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포기가 없는 아가페의 사랑이다.
성경은 사랑에 대해 아가서 8장 6,7절(새번역)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바닷물도 그 사랑의 불길 끄지 못하고, 강물도 그 불길 잡지 못합니다.
남자가 자기 집 재산을 다 바친다고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웃음거리만 되고 말겠지요.
어느 치정 멜로 드라에 어울릴만한 강렬한 사랑, 불같은 사랑의 언어들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에로스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이고, 너에게 정의와 공평으로 대하고,
너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긍휼을 보여주고, 너를 아내로 삼겠다.
내가 너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러면 너는 나 주를 바로 알 것이다.
(호세아 2:19,20, 새번역)
배반하고 떠난 아내, 노예처럼 빚진 아내를 몸값을 주고 사 와 다시 아내로 삼은 호세아 선지자...
그의 인생을 통해 말씀하시고, 다시 한번 거듭 다짐하기를, 배반하고 떠난 인생들을 그 아들 예수의 생명을 내어주고 되찾아오고, 과거를 용서하고, 상처를 싸매어 주고,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로 장가들어, 영원히 진실되게 사랑해주신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부모도 잃고, 재를 뒤집어 쓴 신데렐라와 같은 존재들에게는, 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가?
성경에는 그 하나님의 연애편지이다. 뛰어난 영화감독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경 곳곳에 퍼즐 조각처럼, 엄청난 보물들을 콕콕 박아놓으셨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찾아내고, 보물을 얻도록... 발견하는 기쁨과 환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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