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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 복음이 궁금해?

02.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 모양이에요?

by songofkorea 2016. 1. 10.

인물 큐레이션: 캐빈 카터 (1960~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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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카터와 그의 사진 ‘독수리와 소녀’ (자료 출처: http://photohistory.tistory.com/11328)

너무 허기가 져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땅바닥에 주저 앉은 소녀, 그리고 저만큼 먹잇감을 노리는 눈으로 소녀를 지켜보고 있는 독수리…  

‘독수리와 소녀’로 1994년 퓰리처 상을 받은 캐빈 카터는 영화 <뱅뱅클럽> 스토리의 주인공입니다. ‘뱅뱅’ 총성이 울리면,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피하고 도망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총성이 나는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뛰는 보도사진 기자들… 그들은 전쟁, 학살, 빈곤과 기아의 현장을 목숨 걸고 누비며 사진을 통해 부조리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는 사람들입니다.

캐빈의 사진은 수단의 기아 난민에 대해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냅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대신 소녀를 구하는 것이 급하지 않았는가 하는 여론이 일고, 그는 윤리문제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또한 동료의 죽음과 경제 문제 등으로 괴로워하다가 상을 수상한 지 한 달이 못 되어 자살하고 맙니다. 그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와 있습니다.

“우선 맨 먼저, 정말로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생의 고통이 기쁨을 뛰어 넘어, 더 이상 기쁨 따위가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의 딸 메건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 속의 독수리와 아버지를 동일시했다. 그러나 내게는 아버지가 독수리의 공격 속에 속수무책으로 놓여있던 소녀였고, 독수리는 이 세계로 보였다."


오늘의 말씀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가공할 만한 악의 실체들

총성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는 밤들,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 실체 앞에 너무나 작고 무력한 자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인간의 탐욕과 잔악성을 생각할 때, 캐빈 카터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긍정의 힘을 믿고 소망을 품고 살아가려 애쓰지만, 이따금씩 이 세상의 부조리함은 인생의 애틋한 사연들, 피땀 어린 애환들을 압도해버릴만큼 위협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결책이 없다면, 누가 힘든 진실을 직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들을 외면한 채 바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렇게서로 조금씩 속이고 속아주며 이 부조리한 한 세상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해보아도 거대한 빙산의 밑둥마냥 우리 내면에 원인 모를 불안이 있습니다. 때론 부조리한 악과 고통이 한 순간에 바로 옆에 다가와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웃의 삶을 덮쳐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에 외면할 수 없는 불청객이 들이닥칠 때, 신을 안 믿던 사람마저도 하늘을 향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 모양이에요? 그런 일이 벌어질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나요?”

신은 과연 죽었는가?

창조주가 피조 세계를 관여하고 다스리는 것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신정론(神正論)'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만약 정의로운 신이 있다면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한가, 왜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나 재난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죽는 일이 발생하는가 의구심을 품습니다. 그래서 조물주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긴 하였지만, 더 이상 피조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 눈먼 시계공같은 존재라는 '이신론(理信論: deism)'도 등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인간사에 개입하거나 선악간에 심판하는 그런 신은 믿지 않는 것이죠.

모든 크고 작은 악에 대해 즉각적이거나 현세에서 확인 가능한 정확한 심판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악이 판을 치는 형국은 되지도 않겠지요. 그러나, 역사상, 악인이 득세하고, 죄인이 끝까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장수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이상주의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자국민을 무수히 죽인 킬링필드의 주범 폴포트는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않고 경비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살다가 자택에서 자연사하였습니다. 인민 전체가 김부자의 호의호식을 위해 희생된 북한 주민들의 한이 자자손손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알게 모르게 폭력 앞에 희생된 수많은 눈물과 원한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공할 만한 악과 고통… 그리하여,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는 말들이 난무할 정도입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자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말라기 3:14,15)”

리차드 도킨스가 자비를 들여 내 건 버스 광고는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당신의 인생을 즐겨라'라는 메시지를 흩뿌리며 런던 시내를 달리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남의 악을 보며 고통할 때에는,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욕하고, 반대로 나를 선악간에 판단하고 심판하실 하나님은 부담스러워서, ‘아마 그런 신은 없을 거야. 근심 걱정 떨쳐 버리고, 내 맘대로 자유롭게 살아보자.’ 하고 있습니다. 모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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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도킨스 무신론 광고 (사진 출처: http://m.blog.daum.net/geun1634/2122)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왜 악인에 대한 심판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지, 언제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지는지 나와 있습니다.

심판을 참으시는 하나님

성경에 의하면 인류사에는 두 번의 총체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노아 홍수 때 일어났습니다. 전 지구적인 홍수 재앙으로 인간을 비롯하여 코로 숨쉬는 모든 생물들이 죽었습니다. 방주를 탄 노아 가족 여덟 사람과 대표 동물들만 살아남았습니다. 홍수 심판 이후로도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악을 자행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그리며 당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6:21,22)"

도덕과 윤리가 발달하고, 사회 제도와 법적 장치로 그럭저럭 봐 줄만한 사회가 유지되어서가 아닙니다. 그 때 그 때 인간의 악에 대해 대응하고 심판했다가는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고 살면서 자연스레 악을 뿜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래도 착한 사람이야. 이 정도면 선량한 시민이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솔질히 안 그런 사람이 누가 있나요. 나는 아들에게는 한 없이 자애롭고 희생적이고 존경스러운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며느리는 못마땅하여 교묘하게 괴롭히는 시어머니일 수 있습니다. 상대절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영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레미야 17:9,10)”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고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요. 누군가 나 때문에 하늘을 향하여 '신이시여, 제발 아무개를 따끔하게 혼 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지는 않을까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모순과 합리화의 성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아니, 나 자신도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고 합리화하기 어려운 순간, 사람들이 알까봐 부끄러운 순간 없이 떳떳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불가항력적인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 등등,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이해와 관용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용서와 긍휼을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음도 슬퍼하시며,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살 길을 찾는 것을 바라십니다(에스겔 18:23 참조).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에 대해 바로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은 오직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철저히 심판하시는 정의의 하나님

그러나 기회는 찬스! 있을 때에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악용하여 궤변과 합리화로 끝까지 악의 길을 고집하면, 오랜 인내의 분량만큼이나 준엄하고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심판, 최종적이고 철저한 심판은 인류 역사가 막을 내리는 마지막 때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각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고 선악 간에 정확한 판결과 상벌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 재판관들은 사람 마음의 숨은 동기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뇌물 때문에 불의한 판결을 하기 쉽지만, 하나님께는 뇌물이 소용 없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 중심을 아시고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이 판치는 듯한 이 세상에서 거짓된 감언이설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최종적인 심판의 주,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고, 다른 사람에 대한 심판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그 심판자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 날, 그곳에서, 진정 지혜로운 자가 누구인지 밝혀질 것입니다.


팡세

이번 한 주 동안은요, 누군가의 악하고 거짓된 성품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한 경험이 있는지, 반면에,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시요. 조금이라도 나에게 원인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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