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spel :: 복음이 궁금해?

37.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by songofkorea 2019. 7. 31.

큐레이션 : 영화 미션’ (1986)    

 

 영화 미션은 남미 이구아수 폭포 상류 지역에 사는 과라니족들과의 실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에는 로버트 드니로가 분한 멘도사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원래 악랄한 노예 상인으로서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넘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후에야 깊이 뉘우치고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분)의 권유로 원주민 선교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해결되어야 할 것이 있었지요. 멘도사는 지난 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폭포수 절벽을 무거운 짐을 매고 몇 번이고 오릅니다. 그의 진정성 있는 노력에 결국 가브리엘 신부는그만하면 됐습니다. 당신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라는 선언을 하고, 원주민들도 감동하여 그를 용서해주고 형제처럼 맞이하게 됩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kg 행군 베낭을 매고 백두산을 맨발로 올라야 할까요? 점수를 매겨서 얼마부터는 용서받을 수 있고 얼마부터는 용서가 안 되는 죄일까요? 얼마만큼의 형벌과 고난을 감수하면 죄과가 씻어질 수 있을까요? 죄 지은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풀어주면 될까요? 상대방이 벌써 죽거나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또 사람이 용서하면 거룩하신 하나님도 용서해주실까요? 상대적이지 않고 모호하지 않은 명쾌한 기준이 있을까요?

 

오늘의 말씀

이사야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45:8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Q1. 이사야서 1:18, 1:26,27, 44:22, 45:8, 61장을 읽어보세요. 이스라엘의 허물과 죄를 친히 해결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Q2.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였습니까?

 

핵심 짚어보기

이사야서는구약의 복음서라 불릴 정도로 약 600년 후에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풍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은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앞둔 암담한 시대였습니다. 사회의 지도층은 자기들 배만 위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역시 우상숭배에 빠져 있으면서 마치 하나님이 소와 양의 희생의 피를 좋아하시고, 짐승의 고기를 좋아하시는 양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행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 1:2,11~13)”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 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사야 64:5~7)”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을 알고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들이 의라고 여기는 것조차 다 더러운 누더기옷 같다고 하였습니다. 죄악이 깊고 오래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현실이었습니다. 회개의 메시지를 외칠 때에 이스라엘이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백성에게 굳이 회초리를 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외쳐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듣기 싫어하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것을 볼 때, 이사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너희에게 필요한 것, 내가 주겠노라

그러나 놀라운 것은, 무서운 심판과 멸망의 경고와 동시에 구원과 회복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가 함께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귀환하는 일을 통해 성취됩니다. 더 나아가, 온 인류에게까지 확장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을 예언해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구원과 회복의 예언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주어는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너의 사자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1:26,27)”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을 깨끗이 없애시고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하시는 일은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멸망당하고 고난을 충분히 받아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 15절의 원시 복음, 즉 여자의 후손을 통해 뱀의 머리를 치시기로 하신 약속을 점점 더 구체화 하시고, 이제 곧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는 곧 보내주실 메시야에 대해, 그 출생지와 방법, 메시야로서 어떤 일을 하시고 또 어떠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매우 구체적인 예언들이 나옵니다.  

 

메시야의 신성

인류가 역사 속에서 경험하고 본 인간 예수는 원래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로마서 9:5).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이 말씀은 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 메시야가 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말해줍니다. 미가 선지자도 예수님이 태어나실 장소가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일 것을 예언하고, 또한 예수님은 본래 영원하신 분,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가 5:2)”

 

메시야의 성육신, 사역, 대속의 죽음

이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와 100%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십니다. (이것을성육신,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고 잘 알 수 있도록, 일반적인 생물학적 법칙을 뛰어넘어 여자의 후손으로, 남자 없이 잉태되는 특별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이삭과 야곱과 유다, (이새의 아들) 다윗, 그리고 여러 선지자에게 거듭 거듭 말씀하신 예언의 말씀대로 성육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고, 마음놓고 믿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 약속과 예언들을 근거로 하여다윗의 자손이라는 별명을 예수님께 붙였던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1,2)”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누가복음 18:37,38)”

 

성육신의 목적

그렇다면,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을 정도로 믿기가 힘든데, 하나님은 왜 굳이 성자 예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셨을까요? 그것은 죄의 값으로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인간들을 대신해서죽기위함입니다. 인간 중에서는 이런 대속의 죽음을 감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다 자기 죄가 있고 자기 몫으로 죽어야 하므로, 다른 사람을 대신할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희생적인 사람이 있어서 자원을 하더라도 이미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죄 없으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 대신 공명정대하게 형벌 받으실 육체를 취하신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3,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죽기 위해 태어난 사나이, 죽음을 골인 지점으로 살아간 사나이, 그 특별한 운명의 사나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메시야가 인류를 위해 어떤 고난을 당하고 어떤 형벌을 받고 어떤 죽음을 죽을 것인지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메시야의 사역과 십자가 죽음

이스라엘 민족은 이사야 선지자의 애끓는 회개의 메시지를 무시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끓는 가마처럼 고통스러운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고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고통은 헛되지 않아서 안일하고 무딘 마음들이 깨어나고 옛적에 들은 선지자들의 외침을 비로소 기억나게 하였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메가폰이 되어, 70년의 바벨론 포로 시기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고향 땅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영광을 기억하고, 그들의 우상숭배의 죄악을 뉘우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멸망에 대한 경고와 함께 주어졌던 회복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붙들었습니다. 장차 메시야를 보내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도래하여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예언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61:1)”

이 말씀대로 몸이 불구가 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사회에서 공인된 죄인으로 낙인 찍힌 인생들, 죄의 세력과 악한 영의 세력에 갇히고 포로된 사람들이 나음을 얻고 자유케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의 의의 나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지목하시고 역사 가운데 함께 하시며 예습을 시키신 이스라엘조차도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상을 고집하였습니다. 바벨론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을 물리쳐줄 강력한 메시야, 이스라엘 민족을 강성하게 해줄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의 눈에,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 그것도 말구유에 누인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와 같은 메시야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사야 선지자는걸림돌’, ‘걸려 넘어지는 반석’, ‘함정과 올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메시야를 환영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를 고집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맞춰야지, 왜곡되고 타락한 우리의 본성에 맞게 하나님의 뜻을 재단할 수 없습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이사야 8:14,15)”

이사야 선지자는 곳곳에서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가 인간적으로 홀대 받고 고난 받으며 거절 당할 것을 미리 예언하였습니다. 특히, 이사야서 53장은 메시야의 수난을 영화로 보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수퍼스타의 모습이 아니라 외면 당하고 멸시를 받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분의 인생의 목표가 십자가 고난과 죽음, 대속의 죽음,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자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1~3)”

그런데, 실상 예수님이 당한 찔림과 채찍과 수치는 예수님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헛되지 아니하여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수치는 우리를 구원하고 자유케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형상과 지위로 회복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4~6)”

예수님은 당신의 죽임이 왜 필요한지 아셨기에, 무죄하게 형벌 받을 때에도 순한 양처럼 잠잠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세대 사람들 중 누가 그 죽음의 이유를 알고, 예수님이 죽음이마땅히 형벌 받을 인생들의 허물 때문임을 깨달았겠습니까. 예수님은 살아 생전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하고, 죄인들도 친구처럼 함께 하며 존중한 온유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피지배 민족에 대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가장 흉악한 범죄자인양 나무 높이 달리셨습니다. 그 무덤도 악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억울하고 운명적인 실패의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목적이 있는 의도적인 죽음, 자발적인 희생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동의하신 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 53:10~12)”

하나님은 이렇게 메시야의 탄생에서부터 그 공적인 생애의 특징과 죽으심, 그리고 그 희생의 이유에 대해 선지자들을 통해 상세하게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인생들로 하여금 잘 알아보고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이죠.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성실하게, 열심히 이루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죄악, 인류의 죄악을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것, 죄인들을 정결케 하시고 허물을 안개처럼 사라지게 하시는 것, 이를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는 것,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한 놀라운 긍휼과 자비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악과 허물로 고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팡세

의를 하늘에서부터 부어주고자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기억에서도 지워버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어떤 마음을 느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