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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영화] Life of Pie (파이 이야기)

by songofkorea 2016. 10. 16.


이미지 출처 : http://forested-island.tistory.com/332


난파 이후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 호랑이 리자드 파커와 2백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벌인 사투와 공존과 이별... 그리고 판타지는 너무나 급작스럽게, 차갑게 깨어나고 맙니다. 그 환멸의 순간, 메가톤급 반전 충격에 얼떨떨해져 있는 관객들을 향하여, 영화는 신에 대한 믿음을 살짝 터치합니다. 


직시하기도 어려운 잔혹한 현실과, 좀 더 아름답게 각색된 허구와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 비유가 너무 강렬하여, 관객은 진지한 고민으로 침잠하기도 전에 얼른, 질문자가 내어민 협소한 선택지를 덥썩 잡고, '가짜라도 후자가 더 좋아요~' 하고 답하고픈 충동을 느낄 것입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보이는 이 세계가 전부이고,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 이도, 우리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줄 절대자가 없다면, 그리하여 정의와 공평으로 갚아줄 심판자도 없다면, 우리의 삶은 한 없이 가볍고 불안하고 가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가 아니라도, 있다고 믿는 쪽을 택한다? 


신앙의 실용적 측면(?)이 아주 아주 설득력 있어보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내어민 색안경입니다. 화자는 신을 믿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결국엔 인간의 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게 해주는 영화이지요.  


더 나은 이야기라서, 신이 없는 것보다는 신이 있는 쪽을 믿기로 택한다?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원해서 무언가를 진리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더더구나 그것이 인생을, 영원한 운명을 의탁하는 문제라면... 


허구는 자유로운 상상과 사고 실험을 가능게 하지만, 그것이 진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고 실험이라면, 한껏 생각하고 고민해도,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결코 진실에 다가가지 못합니다.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 인간 사유의 한계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지식이나 관념이 아닌, 진리의 실제를 만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