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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 복음이 궁금해?

29. 라합의 붉은 줄

by songofkorea 2017. 2. 20.

큐레이션 : 정치 신념 바꿀 , 뇌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요사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홍역을 겪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일제의 상처와 분단의 아픔을 도리어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더욱 분열을 조장해 왔던 해묵은 갈등 구조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반공 이데올로기 깃발을 펼치기만 하면, 자동으로 집권 세력이 의도한 프레임을 따라 가던 보수파들이,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그간의 정치 신념에 대한 진정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드신 주변 어르신들이 이제는 다른 정치적 시각을 표현하시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믿어주고 지지하던 리더들에 대한 신념이 배신을 당했을 때, 오래 비난했던 젋은 세대들 앞에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해야 할 때, 어르신들이 느꼈을 허망함과 회한은 어떠할까요? 그간 온갖 반대에 부딪쳐도 니들은 모른다하며 꿈쩍 않으시던 기둥같은 신념들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또한 거짓말하고 속여 왔던 자들은 많건만, 누구 하나 나서서 진정성 있게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 없습니다. 회한 많은 인생을 책임져 주거나 보상해 주는 이 없습니다. 슬픔과 아픔은 고스란히 속은 자들의 몫으로 남습니다.

한 신문 기사는, 정치적인 신념을 바꾸는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만큼 충격을 주는 일이며, 보수층 지지자들이 정치 신념을 바꾸며 심리적인 고통과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관련 기사: http://news.mk.co.kr/newsRead.php?no=3520&year=2017)

정신적인 고통 뿐이 아닙니다. 최근, 동전 500원을 타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하는 어르신들의 짤짤이 순례길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OECD 국가들 가운데 노인 빈곤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65세 이상 노년층의 빈곤율은 5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 아파할 겨를도 없이, 독재의 칼날에 높은 이상일랑 접은 채, 생존을 위해, 자녀들의 행복을 소망 삼아 쉼 없이 달려오신 어르신들, 이제 눈과 귀가 어둡고 몸이 여기저기 아파오는데, 그분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겨울 새벽의 매서운 바람보다도 잔인한 현실입니다.


새벽차 타고 '500 순례길'…가난한 노인들의 하루


정치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은 한 사람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사고와 감정과 선택을 결정하고 행동까지 이어지는 중대한 가치 체계의 근간이 됩니다. 그토록 중차대한 것인데, 그래서 결코 하루 아침게 가볍게 형성되는 것이 아닌데, 너무도 다르고, 또 그 차이로 인한 갈등이 그토록 첨예하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같은 문화권 안에서 같은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같은 현상을 보는데도 너무 생각이 다릅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서로들 자기 생각이 맞다고 굳게 믿는 걸까요?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분명한 것은, 저마다 ‘다른 것을 믿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논리적으로 모순됩니다. 즉, 둘 중 하나는 틀렸거나, 둘 다 틀렸을 수 있지만, 둘 다 진실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유물론과 유신론, 지구 구체설과 지구 평면설 등, 전혀 상반된 주장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만약 내 자신이 운 좋게도 정확한 정보들을 얻고, 통찰력 있게 바른 판단을 하고, 진실의 편에 서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었음이 드러난다면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자신이 속아왔음을 알게 되는 순간, 얼마나 당혹스럽고 힘들까요? 매트릭스의 네오가 선택을 강요받는 파란 약 vs. 빨간 약? 데미안에서 알이 껍질을 깨고 나올 때의 두려움과 고통, 뭐 그런 문학적인 표현이나 흥미로운 픽션이 아니라 바로 내 얘기가 된다면... 나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의 말씀

여호수아 2: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히브리서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Q1. 여호수아 2장을 읽어보세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첫번째 관문, 여리고 성을 정탐하던 이스라엘 스파이들은 어떻게 위기를 모면했습니까?   

 

Q2. 라합은 왜 자기 민족을 배반하면서까지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숨겨주었을까요? 라합이 위험을 감수하며 도와준 댓가로 무엇을 요구했나요?  

 

Q3. 정탐꾼들과 라합의 약속의 보증물은 무엇이었으며, 쌍방은 약속을 어떻게 지켰습니까?


Q4. 라합이 매단 붉은 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에 대한 약속은 얼마나 믿을 만합니까?

 

핵심 짚어보기

약속의 땅 가나안

지난 날,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 족속이 두려워우리는 망했네~’ 하며 부정적인 소리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세대는 광야 훈련 40년 동안 하나 둘씩 다 나이들어 죽고,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을 차지할 때가 왔습니다. 출애굽의 위대한 리더 모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라라는 뜻)가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세를 가까이서 모시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 성막을 떠나지 않았던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 땅, 옛적에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네 후손에게 주마하고 약속하신 바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은 신나게 가서 깃발을 꽂을 수 있는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중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들이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철기 문화를 자랑하는 강한 민족이요, 문화적으로는 이스라엘보다 더 화려하게 발달된 주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의 생명과 힘과 지혜가 마치 자신들 스스로에게서 나온 양 으스대며 허무하고 죄악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펼치기 시작하는 지금 시점에는, 그들의 강포함과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가 목까지 차 오른, 심판의 때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이집트)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창세기 15:13,14,16)”

 

여리고 성 정탐

요단 골짜기 남단에 있던 대도시 여리고는 가나안 정복의 첫 장벽이었습니다. 고대 도시들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짓고 성벽 안에 주거했습니다. 여리고성은 가파르게 경사 진 천혜의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외벽과 내벽으로 이중 성벽을 갖추었습니다. 그야말로 철옹성이요, 이스라엘 신세대들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성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고자 하시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용기를 북돋우셨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여호수아 1:5,6)”

 

여호수아는 먼저 스파이 두 명을 보내어 그 성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여리고성 북쪽에는 양쪽 성벽 사이에 넓은 지대와 가옥들이 있었습니다. 두 스파이는 북쪽 성벽 사이에 있는 선술집에 묵으며 정황을 살폈습니다. 이 선술집 주인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라합이었지요


 

여리고 성벽 단면 개념도와 성벽 사이 상상도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72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히브리 민족의 스파이들이 숨어들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이스라엘 민족이 파죽지세로 이전 전투들에서 승리한 소문이 파다한지라 경계가 삼엄했을 것입니다. 여리고 왕은 즉시 군사들을 보내어 라합이 운영하는 선술집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스파이들을 내놓으라 하였습니다. 두 스파이들은 꼼짝 없이 잡힐 위기에 놓였지요.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작용했습니다. 라합이 이스라엘 스파이들을 비호해준 것입니다.라합은 일찌감치 낌새를 채고는 미리 두 스파이들을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왕의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능청스러운 연기로 이들을 따돌렸습니다.

 

, 맞어유. 워쩐지 그 사람들 억약이 특이하다 했드랬지유. 그란디 어찌까잉~ 그 작자들 바앙~금 전에 저 성문 쪽으로 나갔슈~ 하이쿠, 나는 천치같이 그런 것도 모르고어헐른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게요.”

 

이 여인이 왜 이렇게 행동할 것일까요? 이는 이스라엘 스파이들 입장에선 천운이지만, 여리고 주민인 라합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을 배신하고 이적 행위를 한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입니다. 일제 시대에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에 부역한 친일파, 기회주의자,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자 아닙니까!!!

 

라합이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요? 다른 것 없지요. 한 마디로 하면,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라합은 병사들을 따돌리고 돌아와 어안이 벙벙하고 미심쩍은 표정을 한 스파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여호수아 2:9,10)”

 

어쨋든, 자기 살자고 민족을 배반한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라합의 다음 말을 들어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수아 2: 11)”

 

일본 제국주의가 한민족을 무력으로 짓밟고 조선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여 자기 배를 채우고 호위호식한 것은 전혀 정당화할 수 없는 죄악입니다. 그런 일에 자기 살겠다고 민족을 배반하고 부역한 행동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생활공동체로서의 민족의 테두리, 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영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부정하며 죄의 길을 고집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예비하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민족을 태동시키신 하나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때가 되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주체가 된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언약의 성취요, 가나안 족속에게는 그 동안 쌓고 쌓은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당시는 민족들 간의 전쟁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진위와 우열을 가리는 것처럼 인식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래 전부터 멀리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을 이끌어낸 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은 여리고를 소동케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 강한 이집트를 초토화시키고, 홍해 바다가 갈라져 육지처럼 건넌 기적, 파라오의 용맹한 기마부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고 시혼과 옥 연합군을 격파한 일 등, 수백년 노예 생활을 했던 오합지졸같은 이 민족이, 그들이 섬기는 신의 도움으로 얼마나 혁혁한 승리를 거두고 있는지, 온 일대에 소문이 파다했고, 여리고성 주민들은 이제 죽었구나하며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 공포와 절망 속에, 자신들이 목석을 조각하여 집에, 산당에 모셔놓고 절하고 복을 빌던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믿고 안주하던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나의 오류가 드러나는 시점이었죠.

그런데, 오직 한 사람, 기생 라합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라합은 자신이 오류속에 있었음을 인정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여러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과 달리, ‘너희의 하나님이야말로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참 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같은 팩트, 다른 반응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여리고 백성들이 다 소문을 듣고 실상을 알았으나, 자신의 잘못된 노선을 버리고 살 길을 택한 사람은 기생 라합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다 지나고 역사로 보는 우리 후대 사람들은, 다른 여리고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두려워하던 대로 재앙과 심판이 닥쳤음을 압니다.

이집트 재앙이 진행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 하나 모세의 경고대로 재앙이 닥치는 것을 보고, 모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느끼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박이 내린다고 미리 경고를 할 때에, 과연 그 경고대로 또 이루어질 것을 알고 얼른 들판에 있는 가축이며 종들을 대피시켜 재앙을 피해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나올 때에, 히브리 민족 이외의 다른 여러 족속 사람들도 함께 따라 나왔습니다. 그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현상들을 보며, 그 배후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을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곱을 스무 해 동안 지켜본 외삼촌 라반을 생각해 봅니다. 라반은 조카 야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느끼고 인식했습니다. 야곱이 야반도주하여 그를 추격하였을 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 야곱을 헤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집안 신, 드라빔을 찾기에 혈안이었고, 결코 야곱의 하나님께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거나 믿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곱을 괴롭히는 사람 막대기로서의 조연을 끝내고는, 성경 어디에도 다시 언급되지 않고 잊혀진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라합은 영적인 기민함이 있고 순발력이 있었습니다. 정보의 양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각 사람의 지향성, 선택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합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버텨낼 족속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죽음과 멸망을 예고하는 슬픈 소식이기도 했지만, 진짜 참된 신이 있다는 유레카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라합에게 이스라엘 스파이들이 라합이 운영하는 선술집을 찾아준 것은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고, 기회를 찬스로 포착하여 재빨리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라합의 대범한 요구, 약속, 징표

자기 덕분에 구사일생을 살아난 스파이들에게, 라합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이 숨겨준 은공을 강조하며 빅 딜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온 가족들과, 그들에게 딸린 식솔들까지 다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확실한 다짐과 맹세를 받아내고 보증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2:12,13)”

 

그림 출처: http://bibleencyclopedia.com, http://davidchristopher.net  


당장에 잡힐 뻔한 위기를 모면했는데, 그 청을 거절하기 어렵겠지요. 두 스파이들은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면 인자와 진실로 라합에게 진 빚을 갚아주겠노라 하였습니다.

 

라합은 그들의 약속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실된 눈빛을 보고 확신을 얻은 라합은 성벽 바깥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붉은 밧줄을 달아내렸습니다. 두 정탐꾼은 그 줄을 타고 성벽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요. 라합이 생명을 걸고 살려준 스파이들, 그들의 탈출을 도운 붉은 밧줄, 이제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남아 있는데

약속은 했지만, 기꺼이 살려주고 싶지만, 치열한 전투 속에 라합의 일가친척을 무슨 수로 구분해내고, 어떻게 그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 때, 스파이들에게 번쩍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정답은 바로 붉은 밧줄이라는 이 사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화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18,19)”


이 '붉은 줄'은 라합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준엄한 약속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칠 때에 창에 붉은 줄이 매어 있는 집이 라합의 집이며, 그 집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목숨을 보존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스파이들이 돌아간 즉시 라합은 붉은 줄을 창문에 매었습니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도록, 단단히 매었습니다. 라합과 그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줄 언약의 징표. 그렇게 라합의 집 창문에 알 수 없는 붉은 줄이 매어달린 지 얼마 지나

 

약속을 지킨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 동편에 진을 쳤습니다. 강 서쪽의 가나안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코 앞에 두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언약 백성이라는 표현으로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몸이 아플 때 적군이 쳐들어오면 꼼짝 없이 당하겠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광야 생활 때에 잘 지키지 못했던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곡식을 먹자, 40년을 한결같이 내리던 만나가 딱 그쳤습니다. 본격적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며 민족 국가를 이룰 시기가 도래한 것이죠.

 

이스라엘이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동안, 여리고 주민들은 공격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두려워 성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성밖으론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쪽이 더 높이 올라간 이중 성벽, 굳게 닫힌 문하나님의 작전 명령을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승리 먼저 선언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6:2)”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작전 명령은 제사장들이 앞장 서 양뿔로 만든 나팔을 잡고 언약궤가 뒤따르며 군사들이 성 주위를 엿새 동안 한 바퀴씩, 칠일 째는 일곱 바퀴는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일곱째 날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다 큰 소리를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엔 그 어떤 그럴 듯한 군사적 전략도, 전략도, 전술도, 군사력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이 언빌리버블!한 명령에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칠일 째, 제사장들이 뿔나팔을 길게 울려 불고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힘껏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견고한 여리고의 성벽들이 흔들리고 요동하더니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The Wall of Jericho Fall (그림 출처 : http://bibleencyclopedia.com)

일러스트 : John Song


 이 때, 여호수아는 그 땅을 정탐했던 두 스파이에게 전해 들은 기생 라합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니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6:16,17)”  

 

특히, 라합 덕분에 목숨을 건진 스파이 둘에게 라합의 집에 들어가 그 여인에게 약속한 대로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먼저 이끌어내도록 명령했습니다. 두 청년은 얼른 붉은 줄을 매어 단 라합의 집으로 가 라합과 그 집 안에 든 모든 가족과 친지들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6:25)”


 라합은 훗날 스파이로 왔던 두 청년 중 한 사람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게 됩니다. 보아스는 또다른 믿음의 여인인 이방 출신 룻과 만나 다윗의 고조 할아버지가 됩니다. ‘기생이라는 부끄러운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여인,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 통에 이름 없이 스러져갔을 여인 라합은,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족보에 버젖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루트를 따라 그의 놀라운 믿음의 이야기가 온 세상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히브리서 11:31)”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택하는 자에게 결코 수치를 당하거나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로마서 10:11)”

 

라합 일가를 살린 붉은 줄, 그 집 안에 들어가 있으라는 조건, 그리고 성실하게 지켜진 약속과 구원이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데자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구원의 조건, 그 안에 들어갈 때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는 보장, 그리고 그대로 지켜진 약속, 그리하여 다들 멸망 당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의 확실한 구원대홍수를 피한 노아의 방주가 그러했습니다. 장자 재앙을 피한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그러했습니다. 장대 높이 달린 놋뱀이 그러했고, 라합이 매어단 붉은 줄이 그러했습니다.

이 구원의 방법들에 두드러진 공통점이 보입니다. 구체적인 약속이 제시되었다는 점, 닥쳐올 재앙을 피할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방법대로 했을 때, 약속대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 역사의 사건들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을 줄 수 있는 주체가 먼저 구원의 방편을 제시하고, 약속을 해주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부터 여러 사건들을 통해내가 구원하겠다’, ‘내가 구원의 길을 열겠다’, ‘내가 제시하는 구원의 통로로 들어오기만 하면, 약속을 지키고, 반드시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복음을 가리키지요.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사도행전 16:30,31)”

 

팡세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거나 고생한 경험이 있나요